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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행의 기본┃詩人이 보는 世上┃2024-07-27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7. 30. 17: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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넓은 세상을  아직 안가본 곳이 많다. 앞으로도 부지런히 떠날 생각이다.

몽골도 가봐야 겠고 우즈백 카자흐스탄 인도도 기회를 엿보고 있다

희망 목록에 적어 놓았다.

역사에 대하여 상식이 깊지도 않지만 이상하게 전통과 역사에 대한 관심이 커서 

아직 북유럽이나 남유럽을 가보지 못했지만 서유럽 동유럽 그리스 이집트 이스라엘 터키는

두번 내지 세번씩 다녀왔다. 그러고 보면 낯선 곳을 선호하지 않는 성격이 이런 기형적인 사고를

만들어 낸 모양이다. 아마도 추억이란 명제가 내 삶에 크게 작용하는게 틀림없는 것 같다.

바람이 불거나 느닷없이 비가 오는 날이면 내 가슴은 서걱인다.

나는 기승전결을 명확하게 정리하는 것보다 때로는 여백으로, 때로는 실루엣(silhouette)으로 남겨

놓는 일이 많다. 하늘을 보며 비를 손으로 받아보기도 하고, 혀를 내밀어 비의 맛을 보기도 하고

나름대로 비를 즐기며 걷는다. 빗속에서 발로 느끼던 흙의 감촉, 손바닥 위로 떨어지는 빗물의

알싸한 기운, 흐르던 빗물을 발로 가르며 걷던 그것들까지 그리워진다.

사람의 입맛은 연애와 비슷한 측면이 있다. 쳐다보기도 싫거나 혐오했던 음식도

어느 순간 먹을 만해진다. 심지어 마니아가 되기도 한다. 내겐 호박죽이 그랬다.

엄마 꾸중에 못 이겨 마지못해 물컹하고 진한 호박 냄새가 났던 죽을 맛을 봐야 했다.

억지로 먹다 보니 언제부턴가 그 맛이 참 좋게 느껴졌다. 나도 호박죽을 ‘배운’ 것이다.

호박죽이 맛있는게 아니라 어머니가 그리운 것일게다. 나는 올해도 풋호박 몇개와 단호박

그리고 가을에 호박중탕을 해먹으려  마트아 장날 보는 즉시 사서 모아 놓는다.

추억을 끄집어 내어 보기 위해서이다.

어린 시절에 호박 한덩이만 있으면 전가족이 포식할 수 있었겠지만

나는 물컹하다는 느낌이 싫었고, 굶으면서도 까다로운 입맛때문에 눈총을 받아야했다.

그러나 이젠  먹는다. 추억을 먹고 있는지 모른다.

나는  그리 한가한 사람은 아니지만 짬만 나면 추억 여행을 다녀 오곤 한다.

17세기 영국 사상가 토마스 풀러는 '바보는 방황하고, 현명한 사람은 여행한다

(The gool wanders, a wise man travels.)'고 했던가? 여행과 방황은 똑 같이 일상을 떠나는

것이지만 자기 주도적인 여행은 사람을 영혼을 성장시키지만, 자기 주도적이지 못한 방황은

영혼을 성장하지 못하게 된다. 인간은 영적인 성장을 하기 위해서는 자기 주도적으로 선택하고,

책임지는 능력을 가져야 한다. 인간에 대한숱한 ‘규정’ 중에서 학창시절 우리 뇌리에 가장 깊이

각인된 것은 호모사피엔스, ‘생각하는 인간’이었다. 이성적 존재임을 강조한 말이다.

네덜란드 철학자 요한 호이징가는 호모사피엔스라는 관념을 비판하면서 우리가 그렇게 이성적이지

않다고 했다. 그리고 생각하는 것 못지않게 노는 것이 인간 본연의 특성임을 강조한다.

‘허리띠 졸라매기’로 대표되는 근대화의 합리성은 놀이를 배격했고, 어느덧 ‘근면한 한국인’이라는

칭찬의 굴레 속에 놀 여유없는 우리로 길들여놓았다. 이성으로 절제와 인내를 강제하다가는

우리의 감성은 언제 폭발할지 모른다. 개인의 스트레스, 사회적 소음으로 이어지면서 이성적인

사회유기체의 기능을 손상시킬수도 있다. 그래서 놀이와 여행이 없는 인간과 사회는 반쪽이다.

놀이는 인간 본능인 자유의 표현방법이다. 놀이는 자발적인 언행과 호기심의 집약체이므로,

새로운 문화형식을 창출해낸다.물질적 가치를 염두에 두지 않는 정서적 활동이다.

인간본능을 분출하게 함으로써 개인과 공동체의 정서적 안정감에 기여하고 궁극적으로

사회의 안정적 발전을 지탱해 준다. 19세기 독일 음악가 리하르트 바그너는 '여행과 변화를

사랑하는 사람은 생명이 있는 사람'이라고 일갈했다. 영원한 소년으로 살았던 덴마크의 동화작가

안데르센은 '여행은 정신을 다시 젊어지게 하는 샘'이라는 점을 실천하며 살았고 토마스 풀러는

'당나귀가 여행을 떠날지라도 말이 되어 돌아올 리는 없다.'고 했다. 카우틸랴는 '동행 없이

여행하지 말라.'고 했으며 독일이 낳은 천재적 작곡가 바그너는 '방랑과 변화를 사랑하는 것은

살아 있는 사람이라는 증거'라는 말을 남겼다. 그래서 일까. 나는 가끔 여행의 충동에 사로잡혀

짐을 싸는 버릇이 있다. 물론 '호기심이란 맹목적인 충동에 사로잡혀 여행을 떠나는 자는

방랑자에 지나지 않는다'는 철학자 고울드 스미스의 말을 머리에 담은 채 비행기 좌석에 앉아

잠시 후에 만날 이국땅의 정취를 상상하는 순간이 너무 행복하다. 내가 자주 찾는 TV 채널은

'걸어서 세상속으로'라는 프로그램이다. 아마도 남자들이라면 누구나 즐겨찾는 프로그램일 것이다.

물론 남미나 북미쪽을 제외하면 거의 가 본 곳이기는 하지만 몇번씩 revival해도 실증이 나지

않는 걸 보면 타고 난 放浪癖이 있는지도 모르겠다. 육십이 넘도록 아직 한번도 비행기를 타보지

않는 친구가 있다. 힘들게 여행할 게 뭐냐며 TV를 보면 세계 각국의 풍물이나 문화 유산 등

더 자세히 설명되어 있어 안가봐도 가본 사람보다 더 안다고 호들갑을 떨더니 언제부터인지

그 흔한 동남아 여행을 한번 하자고 졸라댄다. 하필 눈감고도 찾아 다닐만큼 많이 가본 곳을

여행지를 선택했지만 군소리하지 않고 따라 나서기로 했다. 내 지론인즉, 여행이란 가슴 떨릴 때

가야지 다리 떨릴 때 가면 늦는다는 걸 늘상 강조한다. 나는  여행 성수기에 떠난 기억이 별로 없다.

바람개비를 돌려본 적이 있는가? 바람개비를 돌려 보았다면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도 알고

있을 것이다. 바람개비는 바람이 불어야 돌아간다. 바람이 불지 않으면 움직이지 않는다.

그러나 바람이 불지 않는다고 바람개비가 돌지 않는 건 아니다. 바람이 불지 않을 때에는

그 바람개비를 움직여줘야 한다. 즉, 바람이 불지 않을 때 바람개비를 돌리는 방법은

앞으로 달려나가는 것이다. 너무 당연한 말이다. 바람이 불지 않는 것에 대해 불평만 하고 있을

필요가 없다.  많은 사람들이 바람 탓만 하고 정작 자신은 바람개비를 돌리기 위해 뛰지 않는다.

경험론적으로 볼 때 많이 움직이는 사람이 성공할 확률이 높은 게 사실이다.

중국속담에 '나무는 옮기면 죽지만 사람은 옮기면 산다. 사람은 나무와 달리 한 곳에만 있지 말고

많이 다녀 봐야 활기가 생긴다.'는 말이 있다. 알고 보면 우리 삶이라고 하는 게 여행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우리는 모두다 이 지구별이라고 하는 곳에 태어나 잠시 여행하는 나그네 인생에

다름이 아닐 테다. 아마 나처럼 중년(?)을 맞이한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삶의 쓸쓸함을 느끼기

쉬울 때이지만 여행은 그 쓸쓸한 빈틈을 가장 아름답게 메워 주는 역할을 톡톡히 해 내지 싶다.

아니 여행은 나를 젊어지게 하는 샘을 발견하는 일과 같다. 일단 일상의 문지방을 넘기만 하면

그 샘은 도처에서 나를 기다리고 있다. 그런데도 많은 중년들이 일상에 발이 묶여 떠나지 못하는

것을 종종 본다. 제일 먼저 가족이 눈에 밟힌다고 하는데, 지나친 희생은 오히려 자기 마음을

황폐하게 만들 뿐이다. 가족을 행복하게 만들기 위해서라도 적당한 여행은 반드시 필요한 법이다.

혼자 길을 떠나는 것은 여행이지만, 둘이 여행을 떠나면 관광이다.

여행은 적어도 세 가지의 유익함을 가져다 준다. 첫째는 타향에 대한 지식이고, 둘째는 고향에

대한 애착이며, 셋째는 내 자신에 대한 발견이다. 작가 신미숙은 "돌아올 곳이 없다면

그건 여행이 아니라 갈 곳없는 방랑자에 불과할뿐이다. 죽고 싶을만큼 삶이 힘들 때,

누군가를 미치도록 사랑하고 싶을 때, 길을 나서라'고 했다. 나에게는 오랜 경험을 통해서

터득한 여행에 대한 나름대로의 철학이 있다. 여행이란. 현실에서의 도피가 아니라,

현실을 위한 준비라고......여행이란, 막상 떠나는 순간보다 떠남을 위해 준비하는 순간이

더 행복한 것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없을 것이다. 여행에서 만나는 자연스런 모습들이 좋다.

특별한 것을 보지 않아도 멋진 풍광을 보지 못해도 내가 꿈꾸는 여행은 그곳 사람들의 일상으로

들어가보는 것이다. 노천 카페에서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람들 속으로 잠시 들어가

그들과 같은 시간을 보내보는 것, 특별한 것을 탐구하기 보다 소소한 일상을 만나는 즐거움이

나에겐 더 소중하다. 단순히 풍광을 보기 위한 사이트싱(Sightseeing)이 아니라 무엇인가

소원(疏遠)해진 분위기를 다 잡고 비전의 새로운 출발을 전제로 한 만남(Meetting)에

focus를 두고  마음을 비우는 것이 여행의 기본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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