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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강(霜降)┃詩人이 보는 世上┃2024-10-23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10. 23. 21:4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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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제 가을의 절정이다. 영남 알프스 억새가 참 많아 한참 머물며 감상했다.

단풍 든 나뭇잎의 붉은 빛 향연도 가을에 손꼽히지만, 스산한 가을 들녘의 백미는

역시 은빛물결 출렁이는 억새밭이다. 투명한 햇빛 아래 은빛으로 물결치는 억새들은

솜털처럼 푸근하고 정감 있게 다가오는데, 깊어가는 가을, 아직도 아쉬움을 머금은

코스모스의 잔상이 억새와 어우러지고 있다. ‘가을 나들이하면 단풍놀이다’라고

생각한다면 오산이다. 이 가을에 더욱 반짝이며 은은한 빛을 내는 억새와 낭만이 묻어나는

갈대가 우리를 유혹한다. 깊어가는 가을 은빛 갈대와 억새가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한다.

그곳으로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다. 단풍이 오색 빛 화려함으로 가을을 꾸민다면

은빛 억새는 은은한 느낌으로 수수한 듯 황홀한 가을의 낭만을 담아낸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오히려 억새를 '가을의 서정'에 곧잘 빗대곤 한다.

한바탕의 가을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 눈앞에 어른 거리는 은빛물결은

'가을의 열병'을 한아름 안겨 놓고 사라진다. 억새와 갈대는 각각의 차이점이 있다.

억새가 ‘조신한 여성’이라면 갈대는 ‘억센 사내’에 비유되기도 한다.

갈대는 사람보다 크게 자라며 주로 바닷가나 강가의 물가에서 자란다.

억새는 산잔등이나 둑길 등 에서 볼 수 있다. 가을이 지고 있는 자리에 정겨운 사람과

함께하는 억새, 그 현장을 나는 잘 알고 있다. 나만의 장소는 아니지만 그 장엄함은

과연 입이 벌어질만 하다. 흥겨워 부는 가을바람에 억새와 금강의 푸른 물결이 어우러져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쉼터가 되고 후한 인심과 즐거운 체험이 함께해 가족끼리 함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다. 불원간에 한번 다녀 올 생각이다. 바람에 흔들리긴 해도 부러지진 않는

특성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기를 마음에 다짐했었다. 세상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내가 힘이 없으면 내가 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리고 모두들 힘을 기르려고 한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힘으로 맞서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반대라 할 수 있는 부드러움에는

한계가 없다. 그리고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이겨낼 수 있는 더 큰 힘이 있다.

때로는 나보다 큰 힘에 눌려 답답해 할 때가 많았다. 내가 힘이 덜 하다고 생각되어 분하고

억울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을 키우던지 아니면 포기하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단시간에 힘을 키워 이길 수 있다면 즐겁겠지만, 이것은 쉬운 방법도, 좋은 방법도 아니다.

센 바람에 꼿꼿이 서 있는 나무는 부러지기 쉽지만,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약하디 약한 갈대는

흔들리긴 해도 부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차가운 바람은 행인의 코트를 벗기지

못할지라도, 따스한 햇빛은 행인의 코트를 벗길 수 있다는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우화와도

일맥상통한다. "A drowning man is not troubled by rain."이라는 말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처음이 문제이지 한번 자빠져 보면 이젠 흙탕물 정도는 근심거리가

아니다. 큰 일을 당한 사람에게 작은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내가 현역에서 은퇴를 할때는

모든걸 내려놓자고 다짐하며 아무리 힘들어도 신음소릴 내지 않겠다고 내 스스로에게 약속했었다.

가끔 갈대가 흔들리는 모습을 보며 의기소침해지곤 하지만 그건 계절탓이지

내 결심이 흔들린 건 아니다. 커피 한잔을 끓여 창가에 앉았다.

희미한 가로등보다 달빛이 더 환하다. 서리가 내린다는 상강(霜降)이라 그런지 약간 춥다는

생각이 든다. 하지만 그윽한 커피향에 취해 가을속으로 빠져 들어 간다.

그윽한 커피향기는 여수(旅愁)보다도 짙다. 언젠가 커피는 오미(五味)를 품고있다고 예찬하는

글을 보았다. 그리움 설레임 쓸쓸함 애틋함 아늑함이 그것이다. 나도 커피하면 자다가도 깨는

매니아지만, 아직 오미를 느끼는 수준은 아니지만 이 특별한 맛과 향은 순환하는 사계의 낭만과

일기의 변화에 어우러져 절묘한 조화를 이룬다는 지론을 가지고 있다. 겨울비 적시는 날,

첫 눈 내리는 날, 물안개 피는 아침, 꽃이 지는 저녁무렵에 대하는 커피잔 속에는

누구나의 가슴을 사무치게 하는 그 무엇이 녹아 있다. 비 오는 날의 커피는 유달리 향이 좋다.

굳이 원두커피가 아니어도 한 봉의 믹스커피만으로 우리의 눈과 코는 행복해지고

가슴은 따뜻하게 덥혀진다. 이제서야 피곤이 몰려 온다. 오늘은 그중에 가장 편한 날이었지만

연신 하품중이다. 내일 아침은 서리가 내릴지도 모르는데 옷을 두텁게  입을까를 고민한다.

일단 새벽만 견디면 낮엔 땀을 흘리는데 아직은 이른 것 같다.

일단 꿈나라로 직행하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해도 늦지 않을 것 같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영남 알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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