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곳 베트남 푸꾸옥도 가을비 치곤 꽤나 많이 내린 까닭에 흙냄새가 너무 좋다.
비가 내리면 내 행동은 습관적으로 흥분된다. 또한 시인이 되고 철학자의 자리가 형성된다.
이런 날은 추억의 자리에 설 때가 많다. 가슴이 아려옴을 느낀다.
그러나 우리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동안 ‘추억’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숨어 지내다 우리가 예견치 못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감정선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곤 한다.
비가 오면 사람들은 약속이나 한 듯 비의 노래를 찾는다.
생명의 환희가 담긴 봄비나 정열의 여름비와 달리 가을비에서는 잔잔하고 느린 템포의
노래들을 생각해낸다. "비가 내리고 음악이 흐르면..."하는 김현식의 노래를 머릿속에
떠올리고, 채은옥의 ‘빗물’을 생각해낸다. 따스한 커피잔을 손에 쥐고 창가에 다가가
창문에 부딪혀 물결처럼 흘러내리는 빗물을 바라보며 ‘유리창엔 비’를 떠올린다.
그러다 후드득 빗소리에 맞춰 콧노래를 흥얼거리거나 손가락을 까딱거리면서
아무도 모르는 미소를 짓는다. 이 비가 그치면 순도 높은 푸른 하늘아래 잎이 더 푸르러지고
판타지가 곳곳에서 펼쳐질 것이다. 커피잔을 두어번 비웠다.
믹서커피나 자판기 커피를 삼가라고 잔소릴 늘어 놓는 사람들이 많지만
이미 자판기에서 길들여진 입맛인 데, 변할리가 있겠는가?
주머니를 뒤척이면 금방 눈치채고 동전을 건네주던 친구들의 실없는 왁자지껄한 소리가
저만치 들리는 듯하다. 추억에 잠길 때면 시간가는줄 모른다. 하지만 추억이란 항상
미화되듯이 그때의 아픔들 슬픔들 좌절감들을 지금의 나로써는
이미 인지하지 못할 정도에 이르렀다.
불과 10년전의 생각들이 아직도 기억속에 생생하고 차라리 그때가 더 행복했었던것 같지만
그 당시 내가 쓴 글들을 보면 세상에서 가장 불행한 사람처럼 묘사를 해놨다.
물론 그 당시에는 굉장히 솔직한 심정으로 썼기 때문에 지금 시점에서
그 감정이 약화되었다는 것도 알고있다. 추억은 내가 산 시간 중 특정한 일부의 시간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흐르고, 매 순간 현재는 과거가 되지만, 나는 모든 것을 기억하지도 못하고,
기억할 필요도 없다. 수많은 가능성들 가운데에 단 하나만을 선택해야 하는 여행의 시간에서
나는 항상 고통스러웠고, 결국 선택한다는 것은 선택보다도 포기를 배우는 일이라는 사실을
종종 깨닫곤 했다. 추억은 개인의 삶에서 갑작스레 튀어나온 돌기이거나, 혹은 주름에 걸린
이물 같은 존재다. 나는 대부분의 과거를 어렴풋하고 추상적인 어떤 '느낌' 으로 기억한다.
그러나 추억은 비교적 생생하게, 구체적이고 인과적인 내러티브의 형태로 기억되어 있다.
그 이전과 그 이후의 사건은 뿌옇게 번진 사진의 테두리처럼 점점 희미해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추억의 시간만이 도드라진다. 내가 살면서 가질 수 있는 나의 시간은
많지 않다는 걸 잘 알고 있다. 대부분은, 짧은 시간 빌렸다가 잃어버릴 뿐이다.
다행이도 내가 총각 때 지었다는 그 예배당이 그대로의 모습으로 보존되어 있어
이런날은 추억의 그곳을 생각해 보곤 한다. 사자후를 외치던 선배들의 쉰목소리가 들리는듯 하다.
그 골목길들이 점점 사라지고 있다. 나는 조금도 부조화하게 생겨나는 현대식 건물과 상점들로
리모델링되는 공간을 안타까워 한다. 아마도 이렇게 변화되는 모습에 추억이 빼앗기게 되는
데에 대한 불안함이 었는지 모른다. 옛것의 순박함을 잃지 않으면서 현대가 융화될 순 없을까.
긴말 없이 나는 ‘조화’라는 단어로 답을 얻었다. 분명히 많은 곳에서 사라져 가는 것에 대한
재해석과 그 가치를 다시 인정하고 복원하기 위한 노력이 존재한다. 그러한 노력이 잃어버린
고향을 온전히 다시 찾아주진 못하겠지만 말이다. 내가 태어나고 자랐던 고향을 다시 찾았을 때
모든 것이 바뀌고 길도 사라져 전혀 다른 곳이 돼 있는 것만큼 큰 상실은 없을 것이다.
문명이 발달하고 삶의 시계가 빠르게 돌아갈수록 나는 내 머리와 가슴속에 정지돼 있는
기억의 시간을 확인하고 싶어 했다. 만약 휘황찬란한 새 건물만 들어섰다면 오늘날의 파리는
없었을 것이다. 효율과 기능만을 강조한 도시는 사람의 정서와 심미적인 부분을 경시하기 때문에
시민의 삶을 황폐하게 만든다. 그래서 사람들의 추억을 담긴 도심의 골목길들을 없애지 말고
보전해야 한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나는 진한 커피 한 잔의 유혹에 빠진다.
언젠가 커피는 오미(五味)를 품고있다고 예찬하는 글을 보았다.
그리움 설레임 쓸쓸함 애틋함 아늑함이 그것이다. 나도 커피하면 자다가도 깨는 매니아지만
아직 오미를 느끼는 수준은 아니다. 비 오는 날의 커피는 유달리 향이 좋다.
굳이 원두커피가 아니어도 한 봉의 믹스 커피만으로 나의 눈과 코는 행복해지고
가슴은 따뜻하게 덥혀진다. 만약 대책없이 많이 내린 가을비일찌라도 물 고인 마당 웅덩이로
떨어지는 빗방울들이 만든 동그라미 몇 개를 커피잔 안으로 담아와 가볍게 흔들어 마시면
우리는 가을비의 절제된 열정을 마시는거다. 공연히 쓸쓸하단 생각이 들어 진한 커피 한잔을 들고
벌레 먹어 힘없이 떨어져 나딍그는 호젖한 가을 상념의 세계로 떠나 본다.
커피의 계절은 역시 가을이 최고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베트남 푸꾸옥 IslandĐảo Phú Quố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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