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詩人이 보는 世上┃2024-10-17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10. 17. 00:14

본문

 

 

서양 속담에 "깃털이 같은 새들끼리 모인다(Birds of a feather flock together)"는 말이 있다.

우리 사회의 가장 우려할 만한 문제점은 끼리끼리 모이는 계층 간의 두터운 장벽이다.

경제나 교육, 신분이나 지위, 거주지역, 라이프스타일의 차이에 따라 같은 깃털을 가진

새들끼리 모이는 군집현상이 심화되고 있는 실정이다. 이것은 의식적으로 혹은 무의식적으로

자기 편리한 대로 만들어 나가는 현상이기에 참으로 교묘하게 이루어진다.

고급 주택이 즐비한 부자 동네와 가난한 달동네를 오갈 때마다 계층 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실감한다. 죽은 후에 구렁텅이 앞에서 절망하지 않으려면 큰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이들이 먼저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아니, 교회부터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누구든지 어울릴 수 있는 대문 없는 공동체가 되어야 한다. 하지만 '끼리끼리'는 여전하다.

나라가 어지러운 주된 이유는 무엇일까. 권부(權府)와 그 주변에 빌붙어 있는

소수 모리배들이 패거리를 지어 ‘우리끼리 이 즐거움 영원히!’를 외치며 엉뚱한 짓을

하기 때문이다. 권력을 쥔 자들은 기득권 지키기에 양심이 마비돼 세상이야 어찌되든

끼리끼리만 장단을 맞추고, 힘없는 백성은 생명 보존이라는 동물의 본능에 애태우다

기초적 삶의 질조차 돌아볼 여지가 없는 현실이라면 척박한 그 땅에 남는 것은

탄식과 절망뿐일 것이다. "깃털이 같은 새들끼리 모인다"는 말이 정말 맞는 것 같다.

요즘 내 주변엔 경건한 사람이 별로없다. 대신 가식에 젖어 사는 사람도 없다.

인간 냄세 풀풀나는 몸에서 거름 냄세나는 사람들이 주류를 이룬다.

흙은 진실하다는 걸 믿고 하늘 한번 바라보고 땅을 쳐다보는 사람들이 많다.

죽어라 일하지만 욕심의 속도는 그것보다 항상 빠르다고 했다.

욕심의 속도만 늦추면 죽어라 일 안 해도 될지 모른다는 말로 들린다.

일례로, 한 자동차 공장에서 일하던 동남아 노동자가 획기적으로 생산비를 절감할 수 있는

방법을 고안해 냈단다. 회사에서 월급을 두 배로 올려주겠다고 했더니,

월급은 그냥 그대로 받고 일을 절반만 하면 안되겠냐고 했단다.

행복지수가 높은 나라 국민답다. 나라면 어느 쪽을 택했을까?

수입을 예상할 수는 있지만 예상을 넘은 수입은 없다.

이 정도면 살 수 있겠다 싶어 그 만큼은 벌어야지 하면 방법이 없다.

그냥 있는 만큼 쓰다 죽는 거다. 카드보다 현금 지출을 늘리고 물건을 사야 한다면 마트보다

가게를 드나들어야 한다. 하지만 겁 먹을 필요는 없다. 살아보니 어떻게든 살아진다.

현실에 맞춰 살게 마련이다. 그러려니 하면 그렇게 된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배부름과 배고픔,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다고 했다. 즉 그는 외형적 조건이 행복과 만족을 결정하는 것이 아니라는 진리를

터득했다고 했다. 그래서 그는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자족할 수 있다고 했다.

자족할 줄 모르는 사람은 일평생 원망과 불만 속에서 불행한 삶을 살지만 자족할 줄 아는

사람은 정말로 행복한 삶을 살게 된다. 오늘날의 사회현실은 거짓과 속임수 위선이

난무하고 권모술수가 판을 치고 있다. 결국 누구도 믿을 수 없으니 내 진정을 보이지 말고

혼자 벽을 쌓고 살아가야 한다는 사회적 인식이 공공연할 정도이다. 성공하려면,

또는 손해 보지 않으려면 그 무엇도 믿지 말라, 그래서 마침내 자신까지도 믿지 말라고

종용하고 있다. 남을 믿지 못하는 건 내 진정성이 부족하거나 순수하지 못하기 때문은

아닌가를 돌아볼 필요가 있다. 누구를 욕하고 비난하는 건 내가 그보다 못하다는

열등감과 자괴심에서 비롯된 초조가 빚어내는 지극히 어린행위이다.

스스로가 우월하다고 여긴다면 대상이 무엇이건, 무슨 시비를 걸어오건 굳이 상대할 필요를

느끼지 못할 뿐만 아니라,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그런 일에 대거리나 하고 있을 만큼

시간이 그리 한가롭지도 않을 것이다. 전적으로 그 말에 공감하는 건 아니지만

때로는 사람때문에 실망을 한 적이 종종있었다. 상점에 가보면 진열대의 상품 앞에

하나하나 품질의 등급을 매기고 그에 따라 가격도 제각각으로 표시해두고 있다.

요즘 같아서는 사람도 그랬으면 좋겠다는 생각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자동차마다

붙어 있는 에너지효율 소비등급처럼 이 사람이 얼마나 먹고, 얼마나 일을 해내는지

그런 딱지만이라도 이마든 뺨이든 어디라도 붙여주었으면 속이 시원할 것 같은 기분이

들 때도 있다. 하지만 사람 때문에 실방하진 않으려 한다. 한 시인은 ‘흔들리며 피는 꽃’이라는

시에서 “흔들리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젖지 않고 피는 꽃이 어디 있으랴…”라며

그 아름다운 꽃들도 하나같이 바람에 흔들리고 비에 젖으며 피었다고 했다.

사랑스러운 꽃으로 피어나기 위해서 인고의 시간을 견뎌냈다는 점을 강조한 것이다

. 우리네 인생도 그렇다. 힘들고 어려운 일들로 단련돼야 큰일을 할 수 있다. 좋은 것만,

여유롭고 편안한 것만 원해서는 절대 큰일을 할 수 없다. 고난의 과정을 겪으면서

우리는 큰 사람이 된다. 한평생을 살면서 우여곡절 없이 편안하게 사는 사람은 없다.

누구나 말할 수 없는 고난과 어려움을 겪으며 살아간다. 고난을 극복하면서

오히려 그것이 삶의 동기가 되고 원동력이 되기도 하는 것이다.

사무실의 화초를 한번 살펴봐라.

아무리 물을 잘 주고 분갈이를 해도 얼마 지나지 않아 오래가지 못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그 이유는 대부분 창밖의 찬 바람을 쏘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창문을 열어두거나 가끔 밖에 내어놓고 찬 바람을 맞도록 해야 잘 산다는 것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핑크뮬리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