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정의가 되는 시대┃詩人이 보는 世上┃2024-07-14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7. 14. 02:22

본문

 

믿음은 본래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백하는 것을 넘어서야 한다.

하나님의 신실한 사랑하심과 통치하심을 신뢰하는 데까지 나아가야 한다.

물론 여기서 그쳐서도 안 된다. 이 믿음은 오늘 나의 일상 속에 그분의 손길이 함께 한다는

신뢰로 구체화되어야 하고, 최종적으로는 그분께 나의 일상과 눈앞의 세계를 맡기는 것으로

현실화되어야 한다. 그래야 비로소 살아 있는 믿음이라 할 수 있다.

그런데 믿음의 마지막 행동인 맡김을 가로막는 것이 바로 욕망이요 집착임을 발견했다.

하여, 이제부터라도 믿음의 길을 제대로 걷기 위해 최대한 집착을 내려놓으려 한다.

일의 결과를 손에 쥐어보겠다는 심산, 모든 걸 주장하겠다는 허망한 욕심을 내려놓으려 한다.

가볍게 사는 것보다 더 지혜로운 일이 없다는 비현실적인 지혜를 따라가 보려 한다.

라 퐁텐의 우화 제1권 제10화에 보면 '이리와 양'의 이야기가 있는데,

이 이야기는 봉건시대의 지배자의 압정(壓政)을 풍자한 내용으로

루이 14세 (Louis le Grand Monarque)와 그 위광을 빌린 귀족층, 그리고 성직자들의 횡포로

원망이 고조되던 시절을 풍자하여 '가장 힘센 놈의 말이 정의'라는 사회 부조리를 고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어느날 목마른 어린양이 개울가를 찾아 물을 마시는데,

이리가 나타나 감히 자신이 마시는 물을 더럽힌 놈이라고 꾸짖는다.

화들짝 놀란 어린 양은 어쩔줄 몰라 '저는 흐르는 물 아랫쪽에서 물을 마셨기에

물을 더럽히지 않았다'고 호소하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과하며 자리를 피하려 했다.

그러자 이번에는 이리가 '작년에 내 험담을 하고 다닌 놈이 바로 너지?'하면서 트집을 잡으려 했다.

그러자 어린양은 '저는 작년에 태어나지도 않았었는데요'하면서 자신은 이리를 욕한 적이 없다면서

선처를 호소하게 된다. 말문이 막힌 이리는 '네가 아니면 네 형이나 네 어미가 나를 욕하고

다녔을 것'이라며 결국 어린양을 잡아 먹고 말았다는 라 퐁텐의 우화는 절대권력을 가진 자의 말이

곧 정의라는 그 시대상을 꼬집는 이야기이다. 그런데 이런 현상은 중세 봉건주의가 기승을 부릴 때

일어났던 이야기만은 아니다. 요즘도 흐르는 물 아래에서 물을 마셨어도 윗쪽에서 마시는

힘있는 자에게 밋보이면 물을 흐리게 했다는 죄가 성립되고, 힘없는 어린양은 태어나지 않았을 때

욕한 죄목으로 죽음을 당해야만 하는 일들이 벌어지고 있다.

힘있는 자의 말이 곧 정의라는 타락한 문명이 오늘날에도 그대로 통용되고 있다.

정의가 힘이어야 하는 데, 힘이 정의가 되는 시대는 희망이 없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긴꼬리딱새(삼광조) 육추 모습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