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강노지말(强弩之末)┃詩人이 보는 世上┃2024-07-11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7. 11. 01:28

본문

 

 

만약 삶의 아무런 변화없이 살아갈 때 신체적 나이는 당연히 먹지만,

뇌의 나이는 뇌의 가소성(brain plasticity)에 의해 더 빨리 늙는다.

고인 물이 썩듯 뇌의 ‘가소성의 역설’에 의해 천성적으로 뇌는 변화를 싫어한다

(사람이 싫어하는 것이 아니라 뇌가 싫어한다).

그러나, 나쁜 습관을 없애기 위해 적극적으로 움직이기 시작하면 뇌의 가소성에 의해

사람은 새롭게 변한다. 청소년기에 공부를 억지로 하다가 어느날 갑자기 공부에 미처 성적이

쑥쑥 올라가는 경우처럼 뇌의 가소성은 양날의 검이다.

나는 뇌의 가소성을 극복하기 위한 수단으로

독서와 여행만큼 좋은 것이 없다는 생각으로 살아 왔다. 그리고 둔필이지만 계속해서 글을 쓰고,

아마도 이 작업은 멈출 것 같지가 않다. 계속 생각하고 훈련하는 작업이 있는 한  신체적인 나이는

어찌 할 방도가 없지만 정신적으로 황패해지는 건 어느 정도 막을 수 있다고 보기 때문이다.

 나이를 먹고 늙는다는 건 서글픈 일이다.

그렇다고 운명을 거스릴 수는 없는 법이기에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가능하면 남에게 민패를 끼치지 말고 살아야겠다고 날마다 다짐하면서 산다.

늙어서 천덕구니로 살아가는 것처럼 서글픈 것은 없을 것이다.

요즘은 나이 육십이면 청춘이라는 말을 쉽게 하지만 과연 실제로 그렇게 생각할까?

나는  어느 때부터인가 강노지말(强弩之末)이란 말을 가슴에 담기 시작했다.

힘찬 활에서 튕겨나온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緋緞)조차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强)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衰退)하고 만다는 의미(意味)의 고사성어이다.

젊었던 시절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도 뚫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았다.

어쩜 지금까지도 강노(强弩)라고 믿는 구석이 약간은 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지말(之末)에 무게 중심이 이동한 걸 인식한다.

애써 '지말'이 아니라도 부정해도 내 삶의 봄날을 저만큼 떠나보낸 텅빈 가슴이 이를 반증이라도

하는양 쓸쓸해진다. 사실인즉, 4~5년 전까지만 해도 강노(强弩)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전에는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허나, 이젠 '법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함이 발견된다.

법이 나를 지켜주지 않으면 한시도 살 수없는 무력한 존재로 인간은 전락한다.

그래서 인생의 가을을 서글퍼 하는가 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관악산

서울 관악구 신림동 산 56-1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