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훌쩍 두고 떠나는 연습┃詩人이 보는 世上┃2024-04-12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4. 12. 00:54

본문

 

 

요즈음의 세태를 두고 인구에 회자되는 말들이 있다.

더 높은 빌딩과 더 넓은 고속도로를 가지고 있지만 성질은 더 급해지고 시야는 더 좁아졌다.

대체로 돈은 더 쓰지만 소소한 즐거움은 줄어들었고 오막살이에서 사각의 콘크리트 집으로

공간은 커졌지만 같이 생활하는 식구는 줄었다. 일을 해도 끝이 없어 대충 넘겨도 시간은

늘 모자라며, 정보 통신의 발달로 지식은 많아졌지만 판단력은 줄었다.

과거보다 약은 더 먹지만 건강은 더 나빠지며 가진 것은 수량적으로 몇 배되었지만

그에 대한 가치는 줄었다. 늘 그래왔지만  비가 내리는 밤엔 처량맞은 생각에 잠긴다.

난 나에게 있어 그 종점은 언제나 가까스로 와 닿은 하나의 강기슭 같은 것이어서

거기에는 남들이 흔히 말하는 절망감이나 후회 같은 것은 없어야겠다는 마음을 갖도록

노력해야겠다는 생각으로 살아왔다. 백 미터 경주에서 가진 힘을 다 해 뛴 사람이

2등을 했다고 해서 후회하는 것은 무의미한 일일 것이다.

요새는 누구나 제각기 단거리 선수가 되어 두 주먹을 불끈 쥐고 뛰고들 있다.

산다는 것은 곧 뛰는 것을 의미한다.

더 이상 어디에다 채찍을 가하고 무엇을 뉘우쳐야 한다는 말인가.

종점에 이르렀을 때 사람들은 무심코 주변을 휘둘러보기도 하고 자기의 텅 빈 논을

허탈한 눈으로 내려다보기도 할 것이다. 내가 왜 무엇을 위해서 뛰었던가.

회의에 빠진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가진 것이 없으니 장차 잃을 것도 없는 공백한 두 손,

이것은 어쩌면 자유를 의미한 것이며 이 세상 모두를 가질 수 있는 가능성을

은근히 시사해주는 의도가 아닐까. 나는 이런저런 일들에 관련은 없이 살고 있지만

훌쩍 두고 떠나는 연습을 하면서 살고 싶다. 가령 원고를 쓰다가도 어디로 가고 싶은

마음이 든다 치면 그만 원고지를 덮어두고 그냥 빈손으로 불쑥 떠나와 버리고 만다.

어느 날인가도 훌쩍 떠나고 싶은 충동에 뛰어나갔다가 돌아와 책상 위에 쓰다 만 편지를 보고

쓴웃음을 지은 일이 있었다. 편질 두어 글자만 더 쓰고 봉투만 봉했더라면

한 가닥 글의 매듭이 지어졌을 원고를 그만큼에서 내동댕이쳐 놓고 나가버렸던 것이다.

불혹을 넘어선 한 대학교수가 강단을 떠나 생전 해보지 않은 사업을 한다며 동분서주하더니

어느 날 갑자기 두 손을 털털 털고 눈을 감아버렸다. 나는 나의 미완성의 편지에

어미를 적어넣고 문장을 완성하면서 문득 그렇게 가버린 P교수를 생각했다.

그리고 나도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도 언젠가는 모두 그렇게 무책임하게 이 세상을 떠나려니

생각하면 금세 가슴 구석이 저미어 옴을 감지한다. 오늘 하루동안 오간 카톡을 보면서

갑자기 짜증이 밀려와 모임회 카톡에서 탈퇴를 할까를 고민하고 있다.

우리 모임회는 거의 뉴라이트들이 활개를 친다.

"판세가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는 쪽으로 기우러지는듯 보인다"

"국민의 힘 실패하면 이0명손에서 탄핵이 추진될 것이고 하나님이 기뻐하시지 않는 방향으로

떨어질 것을 염려하여 밤에 잠을 이루지 못한다" 등등 입에 담기가 민망할 정도로

편협한 수준을 벗지 못하고 있다. 나는 지금까지도 하나님의 뜻이 어디에 있는지를

잘 모르고, 정말 하나님이 특정당이 이기면 기뻐하시고 지면 슬퍼하시는지를 알지 못한다.

왜 그런 저급한 하나님으로 만들어 버리는 걸까? 나는 모임에서 단 한번도 정치 이야기를

꺼내 본적이 없었다. 복음도 제대로 해석을 못하는 주제에 지금 한국적 상황이 정치적인

편향으로 볼 때 51:49인데 한쪽 편을 마귀처럼 취급하면서

어떻게 모임에서 안쫓겨나고 은퇴했는지 알다가도 모를 일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