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장래가 어찌될지, 앞으로 우리 사회가 어떻게 변할지 불안 불안하기만 하다.
미래학자 앨빈 토플러는 "미래는 예측하는 것이 아니고 상상하는 것이다.”라고 했다.
그는 뚜렷한 혜안으로 아직 알지 못하는 미래의 영역을 탐구하면서
우리 삶에 많은 메시지를 남겼다.
최근 미래 불확실성이 높아지면서 '미래학' 관심이 부쩍 늘어났다.
4차 산업혁명도 미래학에 관심을 높이는 요인의 하나다. 반가운 현상이다.
그만큼 우리 사회가 대응력을 높일 수 있기 때문이다.
미래학에 쏠린 관심이 높아질수록 미래학 비판도 늘었다.
앨빈 토플러에게는 미래학자라는 수식어가 따라 다닌다.
하루 앞도 내다보지 못하는 인간이지만 그래서 앞을 내다보려는 욕구는 더 집요하다.
미래학자는 현대판 델포이 신전의 사제들일지도 모르겠다.
앨빈 토플러는 그 신전의 제사장과 같은 존재였다.
그는 지식 정보 사회를 미리 내다보고 유전자 복제, 퍼스널컴퓨터(PC)의 파급력, 인터넷 발명,
재택근무 등을 예견했다. 한때는 모든 사람이 토플러가 무슨 말을 하는지 귀를 기울였다.
그의 책 ‘미래 충격’ ‘제3의 물결’ ‘부의 미래’ 등은 세계적인 베스트셀러가 됐다.
몇십년 전 앨빈 토플러가 한국을 향해 남긴 조언은 "기업은 덜 집중화되고, 덜 관료화되며,
덜 수직화된 형태로 변화해야 한다. 정부의 개혁이 필수적이다.
유연하고 수평적인 조직으로 탈바꿈할 필요가 있다."고 했다.
미래 수출 환경은 갈수록 어려워질 것이고, 갈수록 더 많은 생산물이 생길 것이기에
이제 남들이 제공할 수 없는 독특한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보고서를 제공했었다.
수출만으론 선진국가가 될 수 없다고 예견했던 것이다.
말하자면 돈만 많다고 선진국이 됳 수 없다는 이야기이다.
어느 시대나 자기 시대의 예언자를 갖고 있다.
고대 이스라엘에는 바빌로니아와 아시리아의 몰락을 내다본 예언자 이사야가 있었다.
이사야 선지가의 예언은 이사야서 41장 1절부터 9절 까지 앞으로 오실 구세주에 대하여
5번씩이나 예언 하고 있다. 우리는 현재를 살고 있지만, 현재를 사는 지혜는
현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과거와 미래에 대한 통찰력에서 나온다.
우리의 미래는 한국의 미래를 떠나서 생각할 수 없으며, 한국의 미래는
세계의 미래와 깊은 관련을 갖는다. 국가의 미래나 세계의 미래에 대하여는
일정한 이론적 체계나 뚜렷한 정설은 없지만 국내외 학자들은 연구를 거듭하고 있다.
흔히 이를 이른바 ‘미래학’이라고 하는데, 결코 허공에 뜬 공상은 아니다. 미래학은
미래의 예측 자체를 목적으로 한다기보다는 예측을 통하여 미래를 준비하도록 하는 데
그 목적이 있는 것이다. 따라서 미래 예측의 내용과 성격도 그것이 의존하는 목적에 따라서
상당한 차이를 갖게 된다. 만약 나에게 미래를 내다보는 눈이 있다면 그 자체가 자산이 된다.
아무리 현재 돈이 많아도 미래를 보는 안목이 없다면 그 자산은 내 것이 아닐 수도 있다.
한 치 앞도 내다 볼 수 없는 우리의 우매함이
현실에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게 하는 것이기에 그렇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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