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여행┃詩人이 보는 世上┃2024-03-22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3. 22. 00:54

본문

 

 

나만큼 여행을 많이 한 사람도 드물겠지만 언제나 떠날 준비를 하면서 살고 있다.

물론 마지막 소풍을 마치면 가야 할 곳도 이미 정해져 있다.

흔히 여행이라고 하는 말이 여행을 목적으로 놓았을 때 뒤에 나오는 주요한 술어가

하나는 ‘간다’이고 또 다른 하나는 ‘떠난다’이다.

사실 그 두 가지가 표면적으로는 일치하긴 하지만 이유는 다른 것이다.

‘여행을 떠난다’는 것은 지금으로부터, 자신의 존재 조건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이고,

‘여행을 간다’는 것은 무언가를 향해가는 것이다.

여행이라고 하는 게 떠난다는 행위가 어차피 올 것을 전제하기에

사실 그 예감 속에서 우리는 여행을 다닌다.

사진을 열심히 찍는 이유도 돌아와서 그때 어떤 것들을 기억하기 위함이다.

하지만 떠나게 만들었던 이유는 돌아와도 여전히 남아있다.

그러면서도 현상을 잊고 싶을 때 여행을 계획한다.

지금 하는일을 어느 정도 마무리를 지으면 바다를 보러 갈 생각이다.

나는 바다를 참 좋아한다. 넘실대는 푸른 파도가 있는 동해안도 좋아하지만

낙조가 아름다운 서해바다를 더 좋아하고, 바다 내음 물신 풍기는 갯벌의 바다를 더 좋아한다.

나는 바닷가에 설 때마다 위대한 자연의 가르침을 얻는다.

강보다 큰 바다는 더 낮은 곳에 위치해 있으면서도 개방적이고 수용적이다.

쉴새 없이 바쁘게 흘러가는 강물은 바다에 이르러 자연스럽게 흡수되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다.

"태양도 지치면 바다에 눕는다"고 했던가? 바다를 닮고 싶다는 생각을 해 본적이 있었다.

바다는 모든걸 포용한다. 주위의 모든 것은 받아들이고 흡수할 줄 아는 사람.

이런 사람이야말로 성숙한 사람이며 위대한 사람이 아니런가.

그래서 바닷가에 서면 철학자의 강의에 빠져드는 기분을 느낀다.

"바다는 작은 물 큰물이나 가리지 않고 더러운 물 깨끗한 물이나 어떠한 물이든

사양하지 않고(海不讓水 故不能其大), 산은 적은 흙이나 큰 돌이나 가리지 않고

능히 받아들여 크게 높일 수 있다(山不辭土石 故能成其高)"는 말이 있다.

돌을 조그만 연못에 던지면 그 파장은 엄청나게 크지만 바다에 던지면 약간의 파장만 일고 만다.

그 넓고 푸른 바다는 모든걸 포용하고 정화한다. 모든 고통, 시름 다 끌어안았기에

멍든 파란색일지 모르지만 자못 완전을 향해 노력하는 인격체라면 이를 닮으라고 무언 손짓한다.

바람은 바다를 육지로 내 몰기라도 하듯이 거세게 몰아부친다.

누군가는 파도가 바람탓이라고 또 어떤이는 바다가 거칠어서라고 한다.

언뜻보면 바람과 바다가 뒤엉켜 한바탕 싸우는 것 같다. 그러나 바다는 바람에 저항하지 않는다.

바람에게 모든걸 내맡겨 스스로 몸부림치며 자신을 뒤집는다. 그것은 정화다.

세상의 모든 쓰레기들을 받아들이는 포용이다.

땅에 사는 생명과 자신의 품에 사는 생명을 살리려는 숭고한 아픔이다.

그래서 나는 혼자있는 시간은 바다를 찾는다. 살다보면 미운 사람도 있고,

기피하고픈 사람도 있고, 상종하고 싶지 않은 사람도 있고, 내 입맛에 안맞는 사람도 있고,

밥맛떨어지는 사람도 있기 마련이다. 그래서 갈등하고 고민한다.

그럴 수록 바다의 마음을 닮아보려고 낙조의 시간 바다를 서성일 때가 종종있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사자바위

경남 거제시 남부면 갈곶리 해안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