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알이 시절을 마감하느라 바람 앞에 몸을 놓아버린다.
9월 속으로, 서두르지 않는 몸짓이다. 서걱서걱. 허공에서 파닥이며 내리는 애잔한 소리,
조갈증을 앓는 중씰한 노인의 마른기침 소리로 들린다. 하지만 그건 내 귀가 만들어내는 소리일 뿐,
은행알은 그냥 시간 속으로 가라앉고 있을 뿐이다. 미련과 집착 같은 감정의 부스러기들 사라지고 나면
연민의 숨결 잦아들어 적막할 뿐이다. 꿈을 머금었던 그 시절 인연에서 벗어나려 뒤척임일 것이다.
이내 침묵이다. 소리 내지 않으니 오히려 귀 기울이게 된다. 침묵도 소리임을 알아차린 것일까.
은행잎은 지고서 얻는 자유를 누림이다. 자유는 휴식이고 인내 뒤에 다시 피어나는 생명력인가.
새벽녘, 베란다창을 열면 내 서재에도 소리 앞세워 바람이 든다. 내 유년의 귀로 듣던 그 바람 소리,
아직도 들린다. 바람은 나이도 안 먹는지 신기한 일이다. 그 때의 싱그러운 바람이 이 순간 살짝 코끝에 얼씬거린다.
먼 산에서 몸을 일으켜 계곡을 지나 온 바람 소리는 그윽한 음향을 지닌다.
온 길 멀고 스쳐 온 계곡 깊은 만큼 음향도 깊고 그윽하다.
그러나 바람은 걸릴 것 없다고 그냥 지나치지 않는다. 어루만지고 쓰다듬으며, 여름 열기 헹구며 가을로 온다.
계절의 폐부 깊은 데서 나오는 소리, 9월의 바람은 그래서 향기롭다. 9월의 향기는 그래서 바람의 것이다.
바람이 뿜어내는 흔들림이다. 그 흔들림은 무딘 일상을 흔들어 시간 위에다 가을을 얹어 놓는다.
9월의 새벽은 소나기 퍼 붓 듯 한바탕 풀벌레 소리로 온다. 길게 가늘게 여리게 세게,
저들의 소리는 간밤의 묵은 시간을 털어 내며 울림으로 온다.
시간 위에 금을 긋는 계절의 반란을 위해 신새벽 잠도 물렸다. 관객이 없는 연주는 외롭고 을씨년스럽다.
저들의 소리 위로 무서리가 내린다. 무서리에 씻긴 소리는 묵은 걸 벗어 던진 만큼 새로움이다.
벗어 던짐으로 얻은 소리는 버렸으므로 득음(得音)이다. 저들의 소리는 바람 앞에서도 멈추지 않는다.
이미 8월이 이슥할 즈음에 맹렬하게 시작한 울음이다. 9월 이후, 농익어 듣는 이의 가슴을 서늘케 했다.
소리가 보인다. 나뭇잎에 부딪혀 한 바퀴 곡예 하듯 후드득 떨어지는 소리 보인다.
새벽의 빈 뜰에 풀벌레 소리 보인다. 스무 이레 하순 달이 딴청 부리다 눈 흘기며 저들의 소리에 귀를 세우고 있다.
빛 사윈 달이 도로 빛을 내고 있다. 지기 위한 마지막 빛이다.
풀벌레 소리와 하순 달의 교환(交驩)은 마침내 우주적 질서 위에 한 켜 아름다움의 자락으로 포개어진다.
극동방송에서 찬송가 소리 들린다. 어느때 보다. 나의 망상을 삽시간에 녹아내리려 함인가.
소리 잦아들 무렵, 초가을의 적막을 돋워내는 은행알 떨어지는 소리에 동편엔 감빛 놀을 질펀하게 펴놓았다.
소멸 뒤 다시 얻는 생명의 천기(天氣)다.감잎 파닥이는 소리, 야산을 타고 내리는 바람 소리,
결이 고운 풀벌레의 유성음들이 모두 찬송가 소리에 녹아들어 경묘(輕妙)한 소리를 빚어낸다.
이전엔 들어본 적이 없는 소리다. 귓가에 닿으면 이내 부서지고 마는 소리, 사람의 귀엔 담을 수 없는 소리다.
마음에 담아야 하는 소리, 가슴에, 영혼에 스며야 하는 소리다. 진리(眞理)의 소리,
마음을 비어야 비로소 들리는 소리,
거듭난 자의 정갈한 귀에나 들리는 소리다. 주님의 음성이다.
나는 지금 이 9월의 애잔한 소리에 귀 기울이며 그 소리로 아침을 열고 있다.
대전광역시 중구 추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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