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한 일이다.
가을이 초입인데 왜 자꾸만 울적해지는 걸까.
청량하기 이를 데 없는 날씨에다 온갖 먹을거리가 풍성한
이 좋은 가을 날.
왜 마음에는 한 잎 두 잎 쓸쓸한 낙엽이 쌓이는 것인지.
아마도 그건 멀리 있는 사람들이 생각나기 때문일 것이다.
잊었다고 생각한 것들이 자신도 모르게
소록소록 떠올라서.......,
슬픔을 솟구치는 데 잠시이지만 가라앉히는 데는 한참이 걸린다.
이 가을, 추억으로 가는 열차, 사색과 성찰의 나무의자 하나......,
스무 살을 갓넘은 어느 해.
저녁노을이 숨 막히도록 예쁜 눈 내리는 겨울날
그녀와 나는 서울역에서 우연히 같은 열차를 탔다.
기차를 타고 나는 끝없이 가고 싶다는 생각을 했고, 그 생각을 눈치 챈 듯 그녀는 웃었다.
그 아련한 미소가 내 가슴을 또 얼마 나 저리게 했는지. 나는 알지 못했다.
첫사랑은 이루어지지 않는다는 것을. 그리고 경험이 한번도 없었기에 더더욱..
그리고 얼마후 그저 무덤덤하게 보내고 싶지 않다는 그녀의 말에 함께 떠나게 된 여행.
“가지 않으면 안 돼?” 열차가 천안역을 막 지나고 있을 무렵.
몇 번을 망설이다가 그녀는 말을 꺼내 놓고
얼굴이 붉어졌다. 사랑한다는 말을 하는 것 보다 그때는 더욱 힘든말이었을 것이다
나도 그녀를 보내고 싶지 않았던 것이다. 그녀가 함께 있어 주기를 진정으로 바랐으므로,
“......,”
대답 대신 나는 쓸쓸히 웃었다.
정해져 있는 선로처럼 정해진 길을 가야 하는 그녀의 입장으로선
나의 웃음이 못내 가슴 아팠을 것이다. 차라리 따뜻한 말로 대답 했더라면,
어차피 갈 수밖에 없었던 상황이라면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 초연하게 대답힐 수 있었더라면.
그래서 그녀의 마음이나마 덜 아프도록........,
지금 생각해 보면 참으로 아쉬운 일이지만
사랑이란 내 마음을 넓히는 데서부터 시작된다는 것을 그 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사랑은 어떠한 경우에도 집착이 아님을,
자기중심으로부터 벗어나지 않고선 아무도 사랑할 수 없음을.
나의 슬픔을 뛰어넘어 환한 웃음으로 그를 마주할 수 있어야 비로소 사랑한다 할 수 있는 것.
어른도 아니고 그렇다고 어린애도 아닌 이십대의 젊음.
삶의 길을 부지런히 모색해야 할 시기인지라
그때 다가온 사랑은 서로간의 가슴앓이로 그칠 공산이 크다.
산다는 것과 사랑한다는 것. 그 시기엔 두 가지 다 버거운 것이 사실이지만
그 모두를 더욱 성숙시킬 수 있는 무한한 가능성 또한 지니고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한다.
정해진 진로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사랑을 포기해야 하는 경우도 있지만.
그 아픈 가슴앓이로 인해 자기 사람이 더욱 풍성해지고 윤택해질 수도 있음을......,
이별할 때,
그 동안 이렇게 사랑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을 가질 것이다. 그 마음대로 사랑하기를.
사랑이 다른 일보다 더 어려운 것은 그것이 커지기 시작하면 자신조차 감당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자신을 송두리째 던져 주고 싶은 충동......,사랑에 빠진 사람은 혼자 지내는 데 익숙해야 한다.
사랑이라고 불리는 그것 두 사람의 것이라고 보이는 그것은 사실 홀로 따로따로 있어야만
비로소 충분히 전개되어 마침내는 완성할 수 있는 것이기에.
사랑이 오직 자기감정 속에 들어 있는 사람은 사랑이 자신을 연마하는 일이 된다.
서로에게 부담스런 점이되지 않으며 그 공간과 거리에서 끊임없이 자유로울 수 있는 것.
사랑에 빠질수록 혼자가 되라. 두 사람이 겪으려 하지 말고 오로지 혼자 겪으라.
모든 사람을 한결같이 사랑할 수는 없다.
보다 큰 행복은, 단 한 사람만이라도 지극히 사랑하는 일이다.
그것도 그저 상대만을 사랑하는 것이어야 하며.
대개의 경우처럼 자신의 향락을 사랑하는 것이어서는 안된다.
나는 사랑하는 사람의 행복을 위해서
그 와의 관계를 끊을 만한 각오가 되어 있는가. 라고 자문해 보라.
만약 그럴 수 없다면 당신은 사랑이라는 가면만 쓰고 있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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