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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문 없는 공동체┃詩人이 보는 世上┃2024-09-08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9. 11. 16: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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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전, 혼자 살던 지인이 세상을 떠났다. 갑작스러운 일이었다.

전날 밤까지 친구들이랑 거하게 소주를 마신 후 집에서 쓰러졌는가 보다.

함께 사는 사람이 있었더라면 119를 불렀을 것이고, 소생의 기회가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하루 동안 꼬박 방치돼 있었다. 그는 그렇게 어처구니없이 갔다.

주변 사람들 대부분이 혼자 살았다. 지인의 장례식을 마치고 슬픔을 나누고자 만든 식사 자리에서

누군가 말했다. '우리 매일, 아니 며칠에 한 번이라도 안부 문자라도 주고받으면서 살자.'

물론 말뿐이었다. 혼자 살지언정 매일 가족들과 안부를 나누는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렇지 않은 사람이 더 많을 것이다. 문제는 이렇게 은연중에 생긴 분화가 아예 콘크리트 장벽으로

고착되어 양쪽이 오갈 수 없는 계급사회가 되어 버리는 것이다. 실제로 계층 상승 사다리가

무너지고 있다는 연구조사는 이러한 우려를 뒷받침해준다. 비종교인들도 다 아는 말씀이지만

누가복음 16장에는 ‘부자와 거지의 비유’가 나온다. 두 사람에게는 생전에나 사후에나 기막힌

대조가 반복된다. 안에 사는 부자는 자색 옷과 고운 베옷을 입었다. 밖에 사는 거지는 아무 옷도

걸치지 못해서 피부병에 걸려 들개가 몰려와 헌데를 핥아대도 쫓아낼 기력조차 없다.

부자는 연일 잔치를 벌여 최고급 산해진미를 즐겼다. 거지는 부잣집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로

배를 채우려고 했다. 부자는 큰 대문이 달린 호화저택에 살았지만, 거지는 집도 절도 없어서

다리 밑이나 산속에 움막을 치고 살았다. 생전에 부자와 거지를 갈라놓은 것은 대문이었다.

대문은 자물쇠로 굳게 잠가놓을 경우 밖에 있는 이들이 안으로 들어갈 수 없다.

부잣집 대문 밖에는 지독하게 불행한 거지가 있었지만 거지는 대문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다.

대문을 열 수 있는 자유와 권세를 가진 부자가 무심한 나머지 열어주지 않았기 때문이다.

부자는 거지에 문 열어 젖혀야 했었다. 하지만 이 둘에게는 범접할 수 없는 차이가 있었고

그 거리를 좁힐 노력을 전혀 하지 않는다. 두 사람이 죽자 운명이 180도 역전되었다.

부자는 화염이 이글거리는 지옥으로, 거지는 아브라함 품에 안겨 생명수가 흐르는 천국으로

들어갔다. 타는 갈증을 견디지 못한 부자가 자기 쪽으로 거지가 건너와 손가락 끝에

물 한 방울을 찍어 목을 축이게 해 달라고 하소연했다.

생전에 거지가 부잣집 상에서 떨어지는 음식 부스러기로 곯은 배를 채우려고 했는데,

이제 사후에는 거꾸로 부자가 거지의 손끝에서 떨어지는 물 한 방울로 타는 목을 축이려고 했다.

아브라함의 대답은 추상과도 같았다. 부자와 거지 사이에 큰 구렁텅이가 가로막혀서

양쪽으로 오갈 수 없다는 것이다. 천국과 지옥을 갈라놓은 구렁텅이는 이미 생전에 대문으로

너무도 다른 두 계층을 철저히 분리시켰다가 사후에 부메랑이 되어서 되돌아온 것이었다.

고급 주택이 즐비한 부자 동네와 가난한 달동네를 오갈 때마다 계층 간에 보이지 않는

장벽을 실감한다. 죽은 후에 구렁텅이 앞에서 절망하지 않으려면 큰 대문을 걸어 잠그는

이들이 먼저 문을 열어젖혀야 한다. 아니, 교회부터 남녀노소, 빈부귀천 가릴 것 없이

누구든지 어울릴 수 있는 대문 없는 공동체가 되어야 할것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28회 무주 반딧불이축제

장소:전북특별자치도 무주등나무운동장

일원기간: 24.08.31. ~ 09.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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