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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존남비' 사회┃詩人이 보는 世上┃2024-06-22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6. 22. 00: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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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이 천변만화(千變萬化)인데 내 기대치에 못미친다면

실망할게 두려워 당분간은 추억속에만 간직하려 한다.

60대 남성의 가슴 한켠에는 사무치는 외로움이 도사리고 있다.

평생 남의 눈치를 보고 경쟁하며 살아온 '베이비붐' 세대들이기 때문이다.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아 뒤돌아 보면 직장 동료들은 어디론가 흩어졌다.

고향이나 학교 친구들은 서울 올라와서 각자 먹고살기 바쁜 탓에 얼굴 한 번 보기 힘들다.

험난한 사회생활에서도 '내 새끼, 내 마누라만은 따뜻한 밥 한 끼 굶기지 않겠다'는

일념 하나로 버텨왔지만, 가장 외로움을 느끼는 곳은 역설적으로 집이다.

흔히 회자되는 말가운 데, 20대 '답'이 없다. 30대 '집'이 없다. 40대 '나'는 없다. 50대 '일'이 없다.

60대 이후엔 '낙'이 없다고 한다. 집이 없고 일이 없을 때도 괴로웠지만

'낙'이 없어지니 살아도 산게 아니다. 예전엔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말이 있었던 것 같다.

허나, 지금 대한민국은 바야흐로 '여존남비' 사회다. 갈수록 남자들이 설 곳을 잃고 있어서다.

청년들은 취업과 결혼, 중장년은 직장과 가정에서 치이고 밀리기 일쑤다.

가장 큰 불안감은 역시 생존에 대한 불안감. 우리나라 직장인들의 평균 퇴직연령은 53세이지만,

'체감 퇴직 연령'은 40대 중후반이라는 게 공통적인 목소리다. 맞벌이 부부가 늘어났다 해도

가정의 생계를 떠맡은 대부분의 대한민국 남성은 40대에 들어서면서 본격적으로 퇴직과 그 이후,

불확실한 미래에 대한 불안에 시달리기 시작한다.

어떤 목사님이 서울역 노숙자들이 모여 있는 곳을 방문했다. 그런데 그곳에는 30대에서 70대까지

남자 노숙자들이 있다. 각기 그들에게 왜 집을 나와서 이곳에서 노숙을 하느냐고 물었더니

한 결 같이 마누라한테 쫓겨났다고 했다. 아무리 생각해봐도 그 이유를 알 수 없어 물어보았더니

그들의 대답은 각기 달랐지만 말을 잘 못해서라는 결론을 얻었다.

30대 노숙자는 마누라한데 아침밥 달라고 했다가 쫓겨났고 40대 노숙자는 외출하는 아내에게

어디 가느냐고 물어보았다가 쫓겨났으며 50대 노숙자는 외출하는 아내에게 언제 돌아오느냐고

물어보았다가 쫓겨났다고 한다. 누군가 말지어 내는 사람이 만든 우스개 소리지만

원래 유모어라는게 시대상을 반영하는 것라는 걸 감안하면 서글픈 생각이 든다.

청학동 출신 방송인이 지아비 '부(夫)'자를 써 놓놓고 하늘천(天)자 위에 점 하나가 더 있는

글자의 모양을 지적하면서 지아비는 하늘보다 높은 존재라는 말을 했다가 몰매를 맞았다.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라는 항의성 댓글에 한문 뜻풀이가 그렇다는 것이지 자신의 생각이

그런 것은 아니라고 애써 진땀을 흘리며 변명하는 모습을 보며 남자라면 씁쓰레한 생각을

가져 봄직하다. 오래전부터 남존여비(男尊女卑)라는 말이 있었으니

요근래 여존남비(女尊男卑)라는 말이 생겼다고 하나도 이상할게 없다.

오히려 후자가 더 인간적이고 여비(女卑)를 하였으니

남비(男卑)가 생기는 것도 당연지사일 것이다.

문제는 장가 간 아들과 시집 간 딸에게 적용하는 논리가 다르다는 것이다.

모두가 자기중심적 발상에서 문제를 보면 갈등의 골이 점점 깊어진다는 것일 뿐이다.

비가 오는 어느 날 오후, 군것질 생각이 간절하여 아내에게 감자나 고구마 좀 삶아 먹자고

청을 했다가 크게 무안을 당한 교수가 있다고 한다. 일언 지하에 거절하면서 덧붙이는 말이

지금껏 45년간이나 봉사 해 왔는데, 이젠 밥과 빨래해 주는 것만도 감지덕지하라는 면박에

그만 자라목이 될 수밖에 없었다 하여 모두 한바탕 웃었지만, 그냥 편히 웃을 일이 아니었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The best couple in Angkor Wat temple, Cambod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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