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미투운동이 전국을 강타하더니 슬그머니 사라지고
이젠 이 사회에 만연된 갑질문화가 역겨울 정도로 화두에 올랐다.
몇년전 일이지만 사전에 나올만한 단어가 되었지만 대한항공 가족들에 의한 "땅콩회향'이란 말이
회자된 적이 있었다. 어쩌면 '그 어머니에 그 딸'이라는 자괴감에 온 국민이 분노를 표출했었다.
언니가 '땅콩회항'으로 주목 받더니 동생이 '물컵'으로 세계적 관심을 끌었다.
그 집안 어머니에 대한 '욕설 파문'도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을 보면 역시 피는 물보다 진한 모양이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뉴욕 타임지에서 한국의 '갑질'을 보도하고 나섰다.
동네 창피가 아닌 세계적 망신에 개인이나 회사 문제가 아닌 국가적 피해를 걱정해야 할 상황이다.
사실 '을(乙)'을 향한 갑질들은 지금 이 순간도 일어나고 있고 또 앞으로 발생할 가능성이 여전하다.
갑질의 백미(?)는 갑질하는 본인의 행동이 갑질인지 알지 못하는 갑(甲)질이다.
국가적, 사회적 이슈가 되는 사례들만 갑질로 아는 '내로남불'형 갑질에 힘없는 '을(乙)'들은
오늘도 울분을 삼키고 있다. 세상이 이렇게 미쳐 돌아갈 때, 종교라고 예외는 아니다.
섬김이 사라지고 남이 알아주지도 않는 권위만 남았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종교는 많고,
기독교만 거기서 예외가 되라는 법은 없다. 영양부족도 치명적이지만,
영양과다는 치명적인데다가 추하기까지 하다. 지금 기독교는 혈관 속속들이 끈적끈적한
기름이 끼어 비대한 살집을 이리저리 뒤척이며 마지막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다.
잠시 더 버틸 수는 있겠지만, 지금의 기독교는 죽어가고 있으며, 죽어야 한다.
그래야 예수가 산다. ‘교회재벌’이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사회경제적으로
확실한 세력을 형성하고, ‘사학법 재개정’ 소동에서 보았듯이, 자기 이익을 챙길 때에는
물불 가리지 않기 때문에, 사회적으로 심한 경멸의 대상이 된다. 게다가 공중도덕도 없다.
사람 많이 다니는 도심 한가운데서 확성기를 틀어놓고 복음성가를 부르며
고성방가를 일삼는가 하면, 어디서든 가리지 않고 핏발 선 눈으로
“예수 천당 불신 지옥”을 외친다. 다른 종교를 향해 턱없이 우월감을 과시하려 들고,
오랜 세월 사람들이 지켜온 관습이나 생각의 습관을 존중할 줄 모르며,
교양 없고 무례하다. 덩치가 작기라도 하면 눈총을 덜 받을 텐데 엄청나게 비대해졌기
때문에 하는 일마다 욕먹기 십상이다. 성경은 모든 인간을 죄 아래 있다고 말하고,
창조주이자 우주만물의 주관자이신 절대자 하나님 외에는 그 죄를 해소할 존재가
없다고 한다. 우리 모두가 죄인이라는 대전제를 인정한다면 좀 더 잘난 죄인,
좀 더 고상한 죄인, 좀 더 성공한 죄인과 덜 잘난 죄인, 덜 고상한 죄인,
덜 성공한 죄인 사이의 구별이 절대자 앞에서는 무의미하다는 말이다.
기고만장(氣高萬丈)하지 말아야 한다. 아무리 흥미진진(興味津津)한 것들도
시들해지는 날이 반드시 온다. 나는 몇년전만 해도 지금의 모습을 상상해 본 적이 없었다.
절대 늙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며 영원한 젊음을 예찬했었다.
그러나 나만 몰랐지,
눈으로 본 것은 머지않아 보았던 것이 되고 만다는 걸 이제서야 깨달았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아가페정원
전북특별자치도 익산시 황등면 율촌길 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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