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침묵하는 수련┃詩人이 보는 世上┃2024-05-27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5. 27. 00: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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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생각한 것은, 슬로 운동은 모든 것을 달팽이 속도에 맞추자는 것이 아니다.

병적으로 빠르게 돌아가는 현대 사회에서 빠름과 느림 사이의 균형을 유지하는 것,

더욱더 풍요롭고 여유로운 삶을 영유할 수 있는 방법을 생각하자는 것이다.

때로는 한 템포 늦추고 생각을 깊이 하면서, 바람에 흔들리는 나뭇잎을 느끼면서,

열흘가는 꽃이 없는 걸 서글퍼하면서, 그렇게 살려 노력중이다.

결국  피고 질텐 데, 아둥바둥하며 살아 온 시절이 허무하게 느껴지기도 한다.

자연으로 돌아가면 모든게 보인다. 회칠한 무덤처럼 겉은 멀쩡한 거 같아도

에스겔 골짜기의 마른뼈 같은 운명이란 것이 선명하게 보인다.

그래서 황혼의 시간만큼은 항상 기우러져 가는 태양을 바라보곤 했다.

내가 아직은 건재하다고 큰소리쳐 보았자 그건 나를 기만하는 짓에 불과하다는 걸 알고 있다.

우리 전통 음악이 서양의 음악과 다른점은 템포와 박자에 있다.

서양 음악이 템포의 기준을 심장 박동에 두는 반면 우리 음악은 호흡의 주기에 두기 때문에

늘어지는 느낌이다. 서양의 음악이 발랄하고 역동적 이어서 심장의 속성을 지녔다면

조용한 호흡의 주기에 기준을 두는 우리의 음악은 그윽하고 사색적 이어서 폐부의 속성을

지녔다 할수 있으리라. 우리나라 사람들은 음악뿐 아니라 건강을 위해 정신 수양을 할때도

단전호흡 으로 정신 수양을 하곤했다. 호흡을 중시 하다보니 음악은 자연히 유동적이 되고

따라서 즉흥성이 가미된 여유로움을 느낄수 있다.

우리의 옛 조상들은 이런 여우로운 음악을 즐기며 사색하고 정신적인 세계를 넓혀가지 않았을까?

하지만 지금은 음악뿐 아니라 삶의 형태 또한 그때의 여유로움 이란 찾아보기 힘들다.

급변하는 사회와 하루가 멀다하고 쏟이지는 새로운 정보들로 인해 호흡이 가빠지고

심장의 박동수가 자꾸만 빨라진다. 새로운 정보의 지식에 대한 공유를 얻지 못하면

사회의 낙오자가 되는 느낌이 들어 뒤도 돌아보지 않고 앞서 달리려고만 한다.

깊이 생각하다 보면 놓쳐 버릴것 같은 불안감에 사고의 시간은 짧아지고,

남보다 먼저 말 하려하고 남의 말은 듣지않는 지경까지 이르러 아무렇게나 쏟아내고

언제 그랬냐는듯이 수습 하기에 바쁘다. 그러면서 모두들 어렵다, 힘들다며 가쁜 숨을 몰아 쉰다.

삶의 질은 여유로움에 있다고 본다. 물질의 여유 또한 아주 중요하지만

이제는 마음의 여유부터 가져야 될 때가 아닌가 싶어 침묵하는 수련을 자주 한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생여대 아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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