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근래 추억에 잠기는 일들이 반복된다.
우리 삶의 기억 안에는 ‘추억’이라는 것이 함께 살아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나이를 먹고 늙어가는 동안 ‘추억’은 늘 한결같은 모습으로
우리의 정신세계 안에서 숨어 지내다 우리가 예견치 못할 때 불쑥불쑥 튀어나와
우리의 감정선을 이리저리 뒤흔들어 놓곤 한다.
나는 사람들의 추억을 담긴 도심의 골목길들을 없애지 말고 보전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다.
골목은 도시의 외곽에나 가야 겨우 만날 수 있는 사라져가는 주거문화가 됐다.
골목을 만들어내는 올망졸망한 작은 집들이 재개발에 밀려 부서지고,
그 자리에 아파트가 들어서고 있기 때문이다. 더불어 이웃도 사라졌다. 어슴푸레한 새벽,
리어카를 끌며 부지런히 걷는 청소부 아저씨의 발자국 소리, 집 앞을 쓸려고 나온
할아버지들의 인사 소리로 골목의 하루는 시작된다. 골목은 아이들의 놀이터였지만
평상 하나만 놓이면 할머니들의 사랑방이 되기도 한다.
슬쩍 보이는 어느 집 창으로 가수가 되고 싶은 중학생 누나의 노랫소리,
혹은 금슬 좋은 부부가 무슨 일인지 티격태격하는 소리가 새 나오기도 한다.
그렇게 골목이 있는 동네에서는 이웃집의 속사정까지 알 수 있다.
담벼락에 친 빨랫줄, 볕 좋은 곳에 널어놓은 고추, 시멘트를 뚫고 핀 민들레….
‘누구의 것이 아닌 모두의 것’인 골목이 있기에 가능했던 이 모든 에피소드를 조곤조곤 들려준다.
전체를 흑백의 드로잉(drawing)으로 처리하면서 아이들의 옷, 슈퍼마켓 아줌마가 든 태극부채,
불 켜진 창 등은 포인트 주듯 색을 입혀 따듯하면서도 생기가 넘친다.
유럽의 많은 국가들은 옛 것은 시대에 뒤처진 것이라 여겨 함부로 부수거나 망가뜨리지 않는다.
오히려 그것을 보물처럼 다룬다. 그런 그들이 옛 것을 보존하는 방식은 가히 놀라울 따름이다.
특히 이탈리아의 콜로세움은 돌기둥들이 아무렇게나 뒹굴어 다니고, 황폐된 모습을
하고 있을지라도 인위적으로 복원하려 들지 않는다. 자연스럽게 둘 뿐이다.
뿐만 아니라 피사의 사탑을 보면 우리는 그것을 더욱 느낄 수 있다.
부실공사의 한 예였던 피사의 사탑은 허물어져야만 마땅했었다. 하지만 그들은 그대로 두었고,
그 결과 한 해에 어마어마한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실수였던 건축물 마저 더 각광받고 있는 것이다. 잡기놀이, 구슬치기, 딱지치기를 하다가
모여앉아 형들이 들려주는 귀신이야기에 새가슴이 되던 골목길이 그리워진다.
학교 앞에는 친구네 아버지가 하시는 만화가게가 있었는데, 우린 그 친구에게 잘 보이려
서로 경쟁을 하곤 했었다. 티비가 희귀하던 시절이라 '김일' 레스링이라도 벌어지는 날은
티비가있는 집 아이에게 비굴할 정도로 굽신거려야 했다. 과거 빈촌(貧村) 바로 옆으로
부촌(富村)이 형성될 때 그랬듯 달동네 주민들은 그저 사회의 부수적인 존재로 전락해 버렸다.
여차하면 옆으로 치워놓으면 되는 짐짝처럼 말이다. 그들은 늘 힘없는 사회 약자였고,
당연히 그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이들도 없었다. 하지만 묻고 싶다.
우리는 한번쯤은 누군가가 찍은 달동네의 사진을 보면서 혹은 영화나 드라마 속 배경에
등장한 달동네를 보면서 향수를 느끼지 않았던가.
빈티지 여행이라며 그곳을 찾아가 평안을 얻고,
추억의 골목길을 다시 걸어보고 싶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주작 덕룡산
전남 강진군 신전면 용월리 산 25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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