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세 컨텐츠

본문 제목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詩人이 보는 世上┃2024-05-12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5. 12. 00:33

본문

 

윌리암 아메스(William Ames)는 하나님의 창조는 두 부분으로 나누어지는데

능동적 창조와 수동적 창조로 나누어진다고 말하였다.

능동적 창조는 하나님께서 맨 처음에 이 세상에 만물을 직접 창조하신 것이고

수동적 창조는 이미 창조된 것들의 변이를 가리킨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것들 중에 아름답지 않을 게 없다.

인간이 그 질서를 파괴하기 때문에 시비가 생길뿐이다.

창조하신 목적이 있음을 안다면 세상엔 하찮은 게 없다.

하다못해 버러지같은 것들도 하나님의 창조사역 안에 있었음을 부인해서는 안된다.

그러므로 모두가 소중한 존재라는 자존감을 버려선 안된다.

사람은 태어나면서 부터 우월이 존재한다. 머리좋은 사람, 잘생긴 사람 등 특출하고

자랑거리가 많은 사람이 존재한다. 하지만 하나님이 지으신 세계속에 정한 기간동안

살다가 언젠가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는 날이 올 거라는 분명한 사실을 안다면

자고(自高)할 수 없다. 뭐가 그리 잘났다고 기고만장하는가.

누구나 빈손으로 나아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뿐이다.

그 주님 앞에 설 땐 캐리어나 공로가 필요치 않다. 예술가들은 누구나 자기의 작품에 서명을 한다.

자기의 공적이나 이름을 들어내고 싶어한다. 그러나 여기 르네상스시대의 거장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작품에 결코 서명을 남기지 않았는데, 여기에는 다음의 이유가 있었다고 한다.

시스틴 성당의 천정 벽화를 그려줄 것을 요청받은 미켈란젤로는 자기의 온 정성과 열의를 다하여

작품에 임하게 되었다. 그리하여 몇 달을 벽화 그리기에 몰두했던 그가 마침내 불후의 명작

"천지 창조" 를 완성했는 데, 흡족한 마음으로 서명을 한 뒤 교회당 문을 나서던 순간

그는 눈부신 햇살과 푸른 자연의 아름다움에 그만 넋을 잃고 말았다.

세상에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그 어떤 화가도 그려내지 못할 대자연의 아름다움!

그때 문득 그에게 한 가지 깨달아지는 것이 있었다. 하나님은 이렇듯 아름다운 자연을

창조하시고도 그 어디에 서명 같은 것을 남기시지 않았는데 기껏 작은 벽화를 그려놓고는

나를 자랑했다니....그는 즉시 되돌아가 천정 벽화에서 자신의 서명을 지워 버렸다.

그리고 그 후로는 어떠한 작품에도 서명을 남기지 않았다고 한다.

조금 더 배운 것이 그리 자랑스런 일인가. 조금 더 크게 키운 교회가 그리 자랑하고 싶은가.

그렇게 총회장하고 싶은가. 만세반석 열릴 때 모두가 십자가를 붙들어야 할 존재들이다.

오히려 나사로가 아브라함의 품에 있을런지도 모른다.

세상에선 쓸모없는 인간이었을지 모르지만 천국은 그런 곳이 아니다.

여의도는 원래 모래땅이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 땅을 보면서 쓸모없는 땅이라고 하였다.

여의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한 임금이 여의도를 보고 별로 사용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여겨서 신하에게 네(汝: 아랫사람에게 가볍게 부르는 호칭) 마음대로(意) 하라고

하면서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랬던 그 땅이 지금은 가장 가치 있는 땅이 되었다.

남들은 쓸모없다고 여겼지만 가치 있는 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한 사람에 의하여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었다. 그래서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없다한들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아도 좋다. 철학자 테모크리토스는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싶다면

많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필요한 일만 하라. 사회적 동물로서의 이성이 요구하는 일만을 이성에 따라 행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반드시 해야 할 일만 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휼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정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와 사명적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무한 가치를 지닌다.

남을 흉내낼 필요가 없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소래포구 습지

 

관련글 더보기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