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양화가 서양화에 비하여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백(餘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전체를 채우는게 아니라 약간의 공백을 두어 독자의 상상력에게 맡기는 기법이야말로
동양화의 진수(眞髓)였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얻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부(富)나 높은 자리도 좋지만, 그 이전에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깜냥과 그릇을 잘 살펴, 무리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즉 자신의 분수(分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술꾼은 만취(漫醉)하는 법이 없다.
가장 기분좋게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약간 알딸딸하다 싶을 때'나 '조금 아쉽다 싶을 때'
잔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때론 가지고 누리는 것이 그러지 않은 것만도 못 할 때가 많다.
논어의 선진편(先進篇)에 보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는 데,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때로는 아쉽다 싶을 때 자리에서 물러나고 여유(餘裕)로움을 찼는게 중요한 데,
능력도 안되는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억척을 떨기에 초라해지는 것이다.
오래 전에 들은 이야기이다. 두 사람이 숲 속에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똑같은 시간 동안 도끼를 들고 나무를 찍는 작업을 했다.
한 사람은 점심 시간에 잠깐 20분 정도 쉬는 시간을 제외하고는 아침부터 저녁까지
계속 부지런히 나무를 찍었고, 다른 한 사람은 적어도 네 차례 정도 넉넉히 쉬어 가며 일했다.
그런데 저녁이 되어 일을 끝낸 후 성과를 비교해 보니 네 번씩이나 쉬며 일한 사람이
더 많은 나무를 벤 것이다. 조금밖에 쉬지 않은 사람이 놀라면서 "아니, 당신은 나보다 훨씬
더 많이 쉬었는데 어째서 나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은 거지?"라고 물었다.
그러자 쉬어 가면서 일한 사람이 "나는 쉬면서 도끼를 다듬고 날을 세우고 있었다네.
그리고 나서 더 힘차게 이 나무를 찍었고, 자네보다 더 좋은 결과를 얻게 된 것이지."라고
대답했다고 한다. 여유(餘裕)는 낭비가 아니다. 여유는 성취를 돌아보고, 또 한 걸음 나아가서
우리의 미래를 준비할 수 있는 바탕이 된다. 그런데도 현대인들은 잠시의 여유도 없이
승승장구(乘勝長驅)라는 올무에 사로잡혀 자신을 학대하는 우(愚)를 범하고 있다.
이러한 현대인의 조급성(躁急性)은 끝내 모든걸 잃고 나서야 후회를 하게 만든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꽃지해수욕장
충남 태안군 안면읍 승언리 339-2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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