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친이 치매로 세상을 하직했다.
어쩌다 카톡을 통해 근황을 확인하는데 요즘 하는 일마다 속시원한게 없으니
스트레스를 엄청 받은 모양이다. 남편복은 고사하고 자식복도 없으니 지지리도 복이 없다며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고 푸념을 늘어 놓는다.
이번 生은 글렀다면 또다른 生이 있다는 말인가 싶어
생각이 복잡해 졌다. 교회 권사인데 설마 윤회설을 믿는다는 말은 아닌 것 같고,
아직 해야 할 일이 태산같은데 아무리 답답하다 하더라도 이번 생은 글렀다고 체념하는 건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표현은 약간 다르지만 이런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다
왜 그렇게 인생을 쉽게 포기하는가.
나는 성경 말씀중에 행 4:11절에 나오는 말씀을 대할 때마다 감동을 받는다.
“이 예수는 너희 건축자들의 버린 돌로서 집 모퉁이의 머릿돌이 되었느니라.”
(“He is the stone you builders rejected, which has become the capstone.”(Acts 4:11)'
버린 돌’은 시편 118편에서 다윗이 자기 자신을 가리킨 말이다. 예수님도 이 말씀을 인용하셨다.
어린 나귀를 타고 예루살렘에 입성하신 예수님께서 성전에 들어가셔서 장사하는 상을 엎으시고는
성전은 ‘기도하는 집’이라 말씀하시며 자신을 빗대어 말씀하시며 ‘버린 돌’이 ‘머릿돌’이 되었다고
말씀하셨다. ‘장인이 쓸모없이 버린 돌이 주춧돌이 되었다’ 얼마나 감격스런 표현인가?
대통령, 대학총장, 장관, 예술가 등등에게 ‘제일 행복한 순간은 언제였냐’고 물어보면
신기하게도 찬란한 영광이나 엄청난 행운울 누리던 순간이 아니라 가난과 고생과 어려움이
많았던 때를 떠올린다. 많은 자식들을 배불리 먹이고 싶은 어머니가 식은 밥에 신김치와
멸치를 넣고 한참 끓여 푹 퍼져 김치죽을 공급할 때가 가장 행복했고 꿀맛이었다고 말한다.
건축자의 버린돌이 성전의 모퉁이 돌이 될 수 있음을 간과해서는 안될 일이다.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가 아니라 버려진 돌이지만 어디에 놓여지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질 수 있다. 다음 생은 존재하지 않는다. 가끔 노인들을 대상으로 하는
프로그램에 보면, '다시 태어나면 이 영감과 결혼할 거냐'고 묻는 질문에 기상천외한 답이
나와 폭소를 자아내게 한다. 다시 태어나는 일이 없을테니까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가 아니라
남은 시간만이라도 후회없도록 만드는 일을 포기해서는 안된다. 젊음은 돌아오지 않는다.
흘러버린 과거는 이미 내 것이 아니다. 지금 나에게 얼마만한 분량이 남아 있는지는 모르지만
그 남은 시간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가 중요한 일이다. 나쁜짓을 할 시간도 얼마 없지만
착한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많지 않다. 그래서 조금 손해를 보더라도 가능하면 후회없이
살려 노력중이다. 지금까진 내 멋대로, 내 맘대로 살아 온게 사실이다. 내 중심적으로 살았다
. 내 생각이 항상 옳다고 우기며 살았다. 나에겐 분명히 소중하고 바쁜 일이지만
남들도 그런건 아니다. 나에겐 긴급한 일이지만 남들도 그렇게 생각해 주지 않는다.
나는 긴급한 사정을 들으면 내 일처럼 뒤를 봐주고, 남 어려운 사정을 외면하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래서 손해를 무진장 보았다. 지금도 그것이 올무가 되어 고통을 당하고 있지만
'어차피 이번 생은 글렀다'가 아니라 '아직 안글렀다'고 자위를 한다.
여지껏 운이 좋아 산 것이 아니라 은혜로 살아 왔고 앞으로도 운같은 건 믿지도 않겠지만
은혜만큼은 절대 놓치지 말아야 할 축복이며 갈구해야 할 명제이다.
오늘만 해도 재수 옴붙은 날이라 할만 하지만 은혜로 살아가는 과정중 일부라고 생각하며
마음을 넓게 쓰려고 마음먹었다. 아침엔 많은 비가 내려 할 일이 없어 일찍 집을 나섰지만
금방 날이 좋아지면서 공연히 거리로 나와 스트레스를 받았다는 후회가 밀려 왔다.
의사의 불친절에 의대 정원을 3천명쯤으로 늘려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그러면 의료대란이 벌어지고 친절한 의사가 더 많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으로
노여움을 해소해 버렸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학원농장
전북특별자치도 고창군 공음면 학원농장길 15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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