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신라 때 솔거(率居)란 화가가 황룡사 벽에 그린 노송(老松)이 얼마나 실물과 같았던지
새들이 날아들었다 부딪혀 죽었다는 일화가 전해진다,
이곳에 머무르면서 내 생각은 깊어지고 인생을 정리하는 참회의 시간을 가진다.
그렇게 후회할 일이 많았느냐고 묻는다면 선뜻 대답을 못하겠지만 아무튼 내 삶에 몇가지쯤은
정말 후회스런 일들과 날들이 있었을 것이고 화해의 손을 내밀어야 할 대상이 분명 있다.
우린 숲을 보지 못하고 나무를 보는 근시안적인 사고에 젖어 살고 있다.
그러기에 원망과 지난 세월에 대한 보상심리에 젖어 살아갈 때가 많다.
원인을 규명해야 하고, 잘잘못의 시비를 따져 선악에 대한 분명한 결론을 내리고 싶어 한다.
누가 선하고 누가 악한가에 대한 답변을 요구한다. 그러나 해피엔딩은 용서에 있다.
사건을 하나님의 섭리라는 큰 그림을 그려놓고 보면 인간의 할일은 거의 없다.
성경에서 가장 위대한 인물을 꼽으라면 각자의 취향에 따라 대상이 달라지겠지만
난 요셉이란 인물에 대하여 추천을 주저하지 않는다.
요셉이 애굽의 종살이를 마치고 마침내 총리로 등극하고 자기를 팔아 버렸던 형들을 만나게 된다.
그리고 용서를 선택하게 된다. 20년만의 해후는 섭리안에 있는 작은 해프닝에 불과한 것이고,
하나님이 앞서 보내셨다는 큰 구원의 틀로 보면 원망이나 시비, 그리고 억울하고 무정한
세월에 대한 보상을 요구할 수 없는 것이다. 형들이 한짓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셨다고 믿는데,
더 이상 어떤 감정의 앙금이 남아 있겠는가? 우린 역사를 만들어 가는 사람들이 아니다.
역사안에 존재하는 사람들인 것이다. 그러므로 내가 용서한다는 교만까지 버릴수 있어야 한다.
내가 용서하려니까 더욱 힘이 드는 것이다. 절대 해피엔딩은 십자가의 교차점 안에 있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앞서 보내셨다고 믿는 믿음의 토대 안에서만 가능하다. 요셉은 그걸 실천했다.
그래서 요셉은 위대한 인물이다. 총리가 되었기 때문만은 아니다. 내가 그 경지에 이르기 까지
훈련된 건 아니지만 정원 바닥을 기어 다니면서 이전보단 훨씬 농후해지고 있다는 생각과
진즉 사유의 공간을 가지지 못한 걸 안타까워 하게 된다.
그런점에서 잠시 동안 몸이 피곤해지고 힘겹단 생각이 들긴 하지만
현실에 만족하며 살려 노력중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공작 한 쌍_꽃지세계꽃박람회장
충남 태안 안면읍 꽃지해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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