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저녁으론 아직 쌀쌀한 날씨지만 한낮엔 실바람이 살갗을 어루만지는 감촉이
비단자락이 스치고 지나가는 듯 산산하고 간지럽고 상쾌하다.
간간히 바람결에 실려 온 싸늘한 기운이 얼굴을 쓰다듬는다.
한동안 봄날씨가 왜 이런지 어리둥절했는데 이제 맑은 정신을 찾은 느낌이다.
세월이 유수와 같다는 말은 빈말이 아니었다. 이 땅엔 영원한 것이 없다.
‘나’라는 존재 자체가 결코 영원한 것이 아닌데, 영원토록 내 것이 어디 있으랴!
앞사람으로부터 잠시 빌려서 사용하다가 그다음 사람에게 아무런 미련 없이 물려주고
사라지는 것이 인생이다. 삼베바지에 방귀가 새어나가듯이, 어느 날 문득 ‘슬그머니’ 말이다.
"홀연히 왔다가 홀연히 떠나니 오랜 세월 머물지 못했어라.
구름 가득 덮인 광릉의 무덤길이여 밝은 해도 가리웠으니 죽음의 집이어라.
빽빽하게 둘러싸인 숲 속 어둑한 곳이여 그대의 혼은 흩날리면서 어느 곳으로 가시는지..."
조선조 시인이자 비평가(평론가)이며 정치가였던 허균은
그의 누이 허난설헌의 죽음에 이렇게 읊었었다.
사람은 대체적으로 천 년을 살 것처럼 끝남을 망각한 채 산다.
찰나의 삶에 어디로 가는지조차 모르면서 말이다.
이러함에도 빈 깡통이 요란한 줄은 안다만은, 세속적인 부(富)만으로 어떤 모임에서든
혼자서만 말이 많거나 그에 빌붙은 간신배까지 있어 곤혹스러움을 안길 때가 있다.
노자는 '도덕경(道德經)'에서 "죄악 중에 탐욕보다 더 큰 죄악이 없다"고 했다.
그런데도 통상적으로 생의 끝자락에 서면 지나침이 없어야 함에도 그르치기도 한다.
사역하는 도중 절실히 깨달은바는 끝없는 노욕에 후배들에게 설 곳조차 제공하지 않는
'그들만의 굿판'만을 보다가 돌아서는 경우도 허다했다.
인생을 살면서 누구나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그러나 이 어려움은 자기스스로 만드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우리말에 제 스스로 무덤을 판다는 말이 있다.
실제로 자기가 묻힐 무덤을 스스로 파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그러나 자세히 보면 정말 자기 무덤을 파는 사람이 많다.
산 사람이 죽은 사람을 위해 무덤을 만들지만 실제로는 자기 자신이 무덤을 만들고 있다.
그게 자기가 묻힐 무덤이란 걸 모르고 열심히 파고 있다
. 나도 내 무덤을 파는 일을 평생했는지도 모르지만
그 걸 아직까지도 실감하지 못하는 우매한 존재이다.
내 삶에 또 어떤 위기의 순간이 있을런지 모르지만 그 고통은 나를 자고하지 못하도록
족쇄를 채우는 연단이었다. 우리 인생도 날씨와 비슷하다. 날씨가 맑을 때도 있지만
먹구름이 몰려올 때가 있고, 비가 올 때가 있고 태풍이 불 때가 있다.
비나 태풍이 주는 유익이 있듯이 우리의 인생에 다가오는 어려움에도 많은 유익이 있다.
고난을 좋아할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고난은 우리에게 엄청난 유익을 준다.
그래서 시편 기자는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시 119:71)라고 고백한다.
고난이 없다면 인간은 자고하게 되고 안하무인이 될 가능성이 농후하다.
그래서 실패는 인간을 더 겸허하게 겸손하게 만든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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