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세상을 사노라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간혹 이같은 ‘봄날’을 느낄 때가 있다.
겨울 삭풍을 참고 견디면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듯
우리네 삶도 근심 걱정을 겪고 나서 찾아오는 안도감,
‘요즘 같으면 살맛나네‘ 같은 평안함 등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봄날이 항상 있을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봄날은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나기 일쑤다.
그것도 알 수 없게 슬그머니 사라진다.
봄날이 떠남을 특히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후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좌우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때부터인가 강노지말(强弩之末)이란 말을
가슴에 담기 시작했다. 힘찬 활에서 튕겨나온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緋緞)조차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强)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衰退)하고 만다는
의미(意味)의 고사성어이다. 젊었던 시절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도 뚫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았다. 어쩜 지금까지도 강노(强弩)라고 믿는 구석이 약간은 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지말(之末)에 무게 중심이 이동한 걸 인식한다. 애써 '지말'이 아니라도 부정해도
내 삶의 봄날을 저만큼 떠나보낸 텅빈 가슴이 이를 반증이라도 하는양 가을은 쓸쓸해진다.
사실인즉, 4~5년 전까지만 해도 강노(强弩)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전에는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허나, 이젠 '법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함이 발견된다. 법이 나를 지켜주지 않으면 한시도 살 수없는 무력한 존재로 인간은 전락한다.
그래서 인생의 가을을 서글퍼한다. “세세년년인부동(歲歲年年人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풀자면 “해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세월이 흘러도 경물(景物)은 변함이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의 모습은 나날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우리 옛 시조가 떠올려지는 대목인 데,
그렇게 시간은 꾸준히 지나가고, 사람의 인생은 덧없이 흘러간다. 영국의 어느 작가가 그랬던가?
“너무 행복한 여인도, 매우 행복한 국가도 역사를 가지지 못한다”고. 힘겨운 일을 겪지 않고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없는 건 개인이든 나라든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내가 겪었던
이런저런 스트레스도, 온갖 시행착오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속마음을 알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마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내 감정을 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이 오갈 것이다.
내 주변엔 많은 지인이 있지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두세명에 불과하다.
시골생활이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불편하냐고 물으면 주저할 필요가 없지만
외로움을 말할 때는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라면
사실인즉 그렇다. 레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도심에서 살다보니
캄캄한 시골생활이 적막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비로서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이 된 기분으로 내 삶을 디자인하고 있기에 아직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루종일 일하고 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으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문학과 사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뒤늦은 후회와
반성을 하노라면 외로워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수면이 극도로 부족한데 허튼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
오늘 못하면 내일해도 상관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굳이 오늘 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여유있는 시간이 나를 허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니 내 감정을 표출할 기회도 없거니와 내 스스로도 그런 값싼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아
대범한척하며 허탈 웃음으로 대신한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
출처: https://newsky1515.tistory.com/3375 [인생은 바람이다: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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