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들을 만나 “요즘 어떻게 보내?” 하고 물으면 그 답(答)이 궁색(窮塞)하다.
”글쎄 왜 사는지?“ 하고 혀를 차며 쓸쓸해 한다.
지나온 삶을 서로 나누다 보면 말라붙은 주름살속에서 어려웠던 삶을 헤아릴 수 있다.
만나는 노인들 모습에서 미세(微細)한 얼굴색깔, 근육상태(筋肉狀態), 고뇌(苦惱)와 고통,
기쁨과 슬픔이 중첩(重疊)되어 있음을 발견(發見)하게 된다. 정도의 크기는 약간 다르지만
나이를 먹으면서 우울증에 시달리는 지인들이 많다.
특히 전문직에 종사했던 친구들에게서 많이 발견되는데,
과거의 향수병에 시달리는 경우를 많이 볼 수 있다.
화려했던 시절이 오히려 마음의 고통을 키워 내는 것같다.
배움이 족쇄가 되어 지식인들이 우울증에 시달릴 가능성이 농후하다.
‘가자 장미여관으로’, '나는 야한 여자가 좋다', ‘즐거운 사라’ 등으로 유명한
소설가 마광수(66) 씨가 스스로 목숨을 끊은 것으로 추정되면서 그 배경에 관심을 불러왔다.
우울증에 의해 극단적인 선택을 한 것이 아니냐는 관측이 지배적이다.
고인이 우울증을 앓았고 약물을 복용해온 것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마광수는 연세대 국어국문학과 교수에서 정년퇴임을 하면서
우울증 증세를 보인 것으로 알려졌다. 정년 퇴직을 앞두고 이데일리와 가진 인터뷰에서
“작가로서 삶에 정년은 없다”며 저술활동을 이어갈 뜻을 밝히기도 했던 그였고,
한때 연세대 대강당에서 학생 1500여명을 모아놓고 강의를 하는 ‘인기 강사’였지만
퇴직할 때는 명예교수직을 제안받지 못했다. 이를 두고 학생들 사이에서는
‘따돌림 논란’이 일기도 했다. 더구나 지병도 그를 괴롭혔다.
퇴임 3개월여 전부터 지병 탓에 강단에 서지 못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은 지난 2011년 이데일리와 인터뷰에서는 “자살을 시도한 게 여러차례”라고
털어놓기도 했다. 당시 이유도 우울증 때문이었다.
그는 소설 ‘즐거운 사라’가 외설적이라는 이유로 1992년 강의 도중 긴급 체포됐고
실형을 받은 뒤 강단도 떠나야 했다. 그는 이 사건을 계기로 동료 교수들의 집단 따돌림을 당해
3년 간 심각한 우울증을 앓았다고 주장한 바 있다. 결국 사람마다 약간 다르긴 하지만
누구나 숨어서 많은 눈물을 삼키면서 살아 왔을 것이다.
슬픔과 고통은 우리 삶에서 일상적(日常的)인 것이며 상처(傷處)위에 상처를,
아픈 기억 속에 가슴 아픈 슬픔을 안고 살아가는 것이 현존(現存)의 감정이다.
어느새 목이 메는 가운데 지난 세월(歲月)의 거품이 사라지고 아픈 추억(追憶)만 남는다.
현실적(現實的)인 꿈도 이상적(理想的)인 꿈도 다 허사(虛事)가 된 듯하다.
후회(後悔)나 회한(悔恨)이 아니라, 그저 매순간(瞬間)의 아쉬움이 남지만
그것은 늙어가면서 느끼는 다양(多樣)한 상실감(喪失感) 때문이리라.
열정(熱情)의 세월도 있었겠지만 지금은 텅 빈 가슴이 아닐 수 없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전주 한옥마을
출처: https://newsky1515.tistory.com/3367 [인생은 바람이다: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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