절기상 찬 이슬이 내린다는 한로(寒露)이다.
한로(寒露)는 추분과 상강 사이에 들며, 음력으로 9월, 양력으로 10월 8일경인데
공기가 점점 차가워지고, 말뜻 그대로 찬이슬이 맺힌다.
한로는 말그대로 '찬이슬'이라는 뜻인데, 늦가을에서 초겨울 무렵까지의 이슬을 말한다.
기온이 백로보다 더욱 낮아 지면의 이슬이 더욱 차며, 곧 맺혀서 서리가 되려 한다.
고대 중국에서는 한로를 3후(候)로 나누어 설명하였다.
"초후에는 기러기가 손님으로 날아오고, 중후에는 참새가 큰물로 들어가 백합조개가 되며,
말후에는 국화에 노란 꽃이 핀다."고 한다. 이 절기 중에는 기러기(鴻鴈)가 한일(一)자
혹은 사람인(人)자 형의 대열로 대거 남쪽으로 이동하고, 늦가을에 날씨가 차서
참새(雀)들도 보이지 않는데, 옛 사람들은 바닷가 갑자기 출현한 수많은 대합조개가
껍데기의 무늬와 색깔이 참새와 매우 흡사하기 때문에 참새가 변한 것이라고 생각하였다.
또 국화(鞠)에 노란 꽃이 핀다는 것은 이때 국화가 이미 널리 피었음을 말하는 것이다.
봄이 오는가 싶으면 이내 초여름이 발치 앞에 다다르고 가을이 짧아져
겨울과 여름이 두드러진다. 이를 두고 아열대 기후를 닮은 현상이라고들 말한다.
꽃 피는 봄과 단풍이 수를 놓는 가을이 짧아진다고 생각하면 당혹스럽고도 안타깝다.
여름과 겨울뿐인 계절은 생활도 감정도 메마르게 만들 것이다. 한로가 아니더라도
요즘은 찬 이슬이 내린다. 아침 저녁으론 쌀쌀하여 옷가지를 가을 옷으로 갈아 입은지 오래이다.
이제 가을이 점차 깊어가는 절기라서 농촌이나 산촌에서는 농작물 수확하기에 매우 바쁜 철이다.
봄에 돋은 싹들이 여름날 번성을 하다가 가을이 되면 잎새의 색이 바래지고 거칠어 지는 것과 같은
이치는 비단 겉모습만 그리 변화시키는 것은 아닐 것이다. 아! 가을이 깊어간다.
어느 틈에 가을이 샛길로 돌아와 나를 저만치 앞질러 간다. 뒤돌아보니 마당 곁에 붉게 물든
단풍나무가 마치 올 봄에 시집갔다가 친정에 돌아온 새댁의 다홍치마처럼 곱다.
산으로 내려오는 길엔 억새가 가을 햇살에 눈부실 정도로 발광체 역할을 한다.
가을의 아름다움을 대표하는 자연의 테마로는 단풍과 억새를 꼽을 수 있다.
단풍이 오색 빛 화려함으로 가을을 꾸민다면 은빛 억새는 은은한 느낌으로 수수한 듯
황홀한 가을의 낭만을 담아낸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오히려 억새를 '가을의 서정'에
곧잘 빗대곤 한다. 한바탕의 가을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
눈앞에 어른 거리는 은빛물결은 '가을의 열병'을 한아름 안겨 놓고 사라진다.
이젠 거리를 나가보아도 온통 가을 색체이다. 들녁이 점점 비워져 간다.
세상 돌아가는 일들이 하나같이 우울한 색깔이다. 그 어디에서도 웃음을,
웃음냄새를 찾아볼 수가 없다. 숨죽이며 지켜보아야만 하는, 방관과 자조의 깊은 늪에서
허우적거리는 이 소시민적 비겁성을 명패로 지닌 내가 할 수 있는 일은 아무것도 없다.
요즘은 잘 늙어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내가 노력해서 '나이'를 먹은 게 아니다.
살다보니 저절로 나이를 먹었기에 나이 먹은 것을 내 세울 것이 없다.
나이 듦이 나에게 가져다주는 것은 권위도 지위도 아니다.
그저 세상 사람들의 조그만 동정에 불과할 뿐이다. 벌써 환갑을 넘겼으니
언제 세월이 훌쩍 지닜는지 아쉬운 마음이 들곤 한다. 어린시절의 모습이 파노라마처럼
스쳐 지나가면서 앞으로 20여년 후면 모두가 정해진 길로 떠나게 될거라는 생각이 들면
서글퍼지기도 한다. 나는 좀처럼 속마음을 내색하지 않는다.
고독한 순간들을 어떻게 견디는지 궁금한 마음이 들지만 묻는법이 없다.
대충 짐작할뿐이지 속마음을 들어내는 일은 거의 없다. 어차피 노년이 되면 혼자서 즐기는
외로운 습관을 들여야 한다. 인간의 개성이란 그 영혼 안에서 주어진 한계의 생명이다.
어렸을 때는 영혼의 성숙함이 미숙하고 개성이 발달되지 못하여서 소속감을 가지고,
즉 부모 형제 선배 스승 이웃한테 인정 받음으로써 안정감을 느끼며 살아왔다.
그러나 노인이후 부터 성숙하고 성장한 자기 영혼의 골방에 들어가 자기 속에 보화를 갖고
외롭게 혼자서 다둠는 것이어야 한다. 생의 중심이 어렸을 때는 감각적인 것에서
청소년 때는 이상적인 것과 활동적인 것인데 노인이 되고부터는 현실적이고
자기 안에 세계로 깊어진다. 마치 가을이 되면 잎들이 떨어지고 그생명이 뿌리로 내려가
추운 겨울을 이기고 살아남듯 노인 이후에 삶도 점차 자신속으로 깊이깊이 들어 간다.
대단한 허무주의자가 아니더라도, 한창 펄펄 피가 끓는 젊은이라 할지라도 간혹,
혹은 간헐적으로 자신의 내면을 바라보는 시간은 있다. 가을의 절정인 한로는 일년의 내면,
인생의 내면을 바라보기 좋은 절기이다. 찬 이슬에 맺힌 달빛을 볼 수도 있고,
새벽빛이 찬이슬에 스며들어 신비한 느낌으로 다가오기도 한다.
이슬 방울이 국화꽃잎에 맺혀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이제 한로가 지나가면 기온이
'뚝' 떨어질 것이다. 다음이 가을 절기의 마지막이다. 봄과 가을은 짧아서 아쉽다.
하지만 짧은 것은 가을만이 아니다. 영원하자고 맹세한 연인들의 사랑도 짧고,
죽마고우라고 믿었던 친구들의 우정도 아주 짧다. 인간이란 본질적으로 자신의 마음만
모든 것을 본다. 그래서 간혹 친구나 연인이나 혹은 가족이라도 섭섭하고 보기 싫을 때가 있다.
그 때 한로의 찬 이슬을 손으로 만져보자. 삶이란 이 찬 이슬처럼 금방 사라지고,
저 광활한 우주의 한 점 티끌처럼 떠돌다 사라지는 그 무엇인 것이다.
타인에게 큰 기대를 하지 말고, 그냥 그저 사랑하면서 사는 게 현명한 길이다.
이 이슬방울이 국화꽃잎에 맺혀 있다면 더욱 좋을 일이다.
도시에는 가을이면 국화 전시회가 반드시 열리기 마련이다. 옛 시절처럼 국화전을 지지고,
국화 술을 빚어 먹지는 못할지라도 국화전시회를 보고, 찻집에서 전시회에서 맡았던
국화향기를 떠올리며 국화차 한 잔 마시는 것도 이 가을을 즐기는 한 방법일 것이다.
이제 설악산에서 부터 오색 단풍으로 물들어 갈 것이다. 이곳까지 단풍이 내려 오려면
한동안 시간이 더 필요하겠지만 벌써 맨드라미와 형용색색의 꽃들이 절정을 이루고 있다.
국화도 꽃망울을 터트릴 준비를 끝내고 가을을 불러 들이고 있다.
가슴속에선 공연히 가을 바람이 불고 서걱서걱 댓잎 스치는 소리도 날 것이고
떠나야 할 때를 앞둔 쓸쓸함도 생겨날 것이니 그 또한 가을의 기질이 가져다 주는
정서의 변화들이겠다. 요즘들어 한층 높고 푸르러진 쪽빛 가을하늘이 청명하다 못해
눈시울이 불거질 지경이다. 결실과 조락의 이 분기점에서 조우하는 계절 앞에서
유독 나는 남다른 몸살을 앓는다. 모르긴 해도 어딘가에 감추어진 한 가닥 실낱같은
그리움이나 꿈과도 같은 희망의 절대치가 똬리를 틀고 있는 까닭이리라.
가을은 남자의 계절이다. 낙엽이 나뒹구는 쓸쓸함에 가을 남자는 빈 노트에 가을을 쓴다.
연분홍빛 벚꽃 터널이 몽환적이라면 줄지어져 흩날리는 은행나무 가로 숲은 깊은 사색의
감흥을 키워낸다. 그리하여 조금은 쓸쓸한 기운이 감돌고 뭔가 채움을 기대하는 심리가
발동한다. 가을이라 그런지 조금만 이상한 표정을 지어도
친구들은 “너 가을 타는 모양이다”라고 핀잔을 준다. ‘가을을 탄다’는 참 오묘하면서도
아름다운 말이다. 가을이 되면 심적으로 우울해지거나 침체되는 심적 상태를 표현하는
것일게다. 여리고 아린, 숭숭하고 털털한 마음결을 읊은 시구가 아닐 수 없다.
가을은 왠지 참한 규수의 인품마냥 들뜨지 않아 좋다. 물먹은 티슈처럼 차분하다.
그러면서도 산만하지 않은 색채의 수채화를 볼 때처럼 가슴 한쪽이 먹먹해지는 건
또 무엇 때문일까. 남자의 가을은 싱숭생숭하고, 가을날의 푸닥거리로 잊고 지낸
추억 속의 그 사랑이 새록새록 생각나면서, 새로운 사랑에 목말라한다.
그나마 이렇게 가을앓이를 하는 것은 복에 겨운 사치일지도 모른다.
더 나이 든 남성들은 가을이라도 테스토스테론 분비가 줄어들면서 가을도 못 탄다.
이런 남편은 그저 아내 치마꼬리만 잡고 따라다니려고 하니 딴짓하려고 애썼던
지난날의 전력때문에 구박받으면서도 일언반구(一言半句)도 못한다.
하루 세끼 다 찾아먹으려하는 삼식이들 외엔 대부분 가을타는 남자가 된다.
산을 내려오는길에 친구녀석이 잘익은 대봉시 하나를 건낸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장안산 억새를 바라보며
전북특별자치도 장수군 계남면 장안리 산 116-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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