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이라는 시험에 만점 맞을 필요는 없다. 다른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채점할 수는 없다.
그 인생에 대한 시험결과는 오직 내 스스로가 채점할 뿐이다.
평균 점수만 맞아도 인생사(人生史)는 우수하다. 한번뿐인 내 인생, 너무 타이트하게 살 필요 없다.
내 스스로 나에게 매일 칭찬하면서 살고, 나에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상주면서 박수쳐주면서
살면 된다. 시인 천상병은 인생은 잠시 소풍 왔다 가는 거라 했지 않은가?
천상병시인의 말처럼 인생이란 즐거운 소풍 같은 것 아닌가?
즐겁게 놀러왔다가 즐겁게 놀고 가는 것 그게 인생 아닌가?
나이 들면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적어지고 나를 찾는 사람도 줄어드니 서두를 것은 없지않은가?
사실 나이 들면서 가장 넉넉해지는 재산은 시간뿐이다.
내주변에서 약속 시간을 잡으려하면 바쁘다는 이야길 꺼내는 사람이 점점 줄어든다.
하루에도 성가실 정도로 많은 전화 통화를 받았지만 이젠 벨소릴 듣는 것도 뜸해지고 있다.
나는 가끔 내가 지금 지나고 있는 시간이 '노년'인지 '중년'인지햇갈릴 때가 많다.
아이를 키우고 부모 세대를 모시며 사회에서 가정에서 가장 많은 역할을 맡고
가장 왕성하게 살아가는 세대가 중년 세대다. 그럼에도 ‘허리’의 자리는 늘 말없이 묵묵하게
자신에게 주어진 것을 수행하는 것을 당연한 미덕으로 여긴다. 10~20대 청춘들에게는
나이 지긋한 어른으로 취급받고, 노년에 접어든 어른들에겐 한창 쌩쌩한 젊은이로 인식되는
낀 세대이자 애매한 나이인 것이다. 이 시기는 방황하기 쉬운 시기다.
중장년의 위기라는 말도 있지 않은가. 느닷없이 위기의식이 찾아든다.
나이가 들면 청춘의 방황도 끝나고 인생의 의미도 깨칠 수 있을 것 같았지만,
막상 중장년이 되고 보니 오히려 마음속에서 이런저런 불안들이 더욱 기승을 부린다.
나는 대견한 사람이고 훌륭한 일을 했다고 허풍선(虛風扇)을 떨어 본다.
어차피 다른 사람들이 박수쳐 줄 걸 기대하지 않으니 스스로 할 수 밖에.....
언젠가 인터넷을 통해 "내 인생에 박수 내 인생에 박수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는 노래를 접했다.
효녀 가수로 잘 알려진 현숙의 노래 <내 인생에 박수> 첫 소절이다.
정현숙이 쓰고 조만호가 곡을 붙였다. 처음엔 '내 인생에 무슨 박수 칠 일이 있나?' 며 의아해 했다.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노래였지만, 차츰 흥미를 느꼈다.
서글프면서도 구구절절이 맞다고 생각한 노랫말과 어우러진 가사가 듣는 이에게
회한과 삶에 대한 미묘한 감정을 떠오르게 하는 노래였다.
"굽이굽이 내 인생에 박수를 보낸다"는 노랫말처럼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는 삶을
살고 싶지 않은 이가 있을까. 여전히 방황이라는 팔자좋은 이름을 긴 시간 달고 있는 나에게는
귀가 쏠깃해지는 노랫말이었다. 할리우드에서 무명배우의 설움을 극복하고 인생역전에 성공한
배우들은 10만 명 중 50명 정도만 스타로 대접받는 반면 절반 이상은 돈 한 푼도 못 버는
무명배우 타이틀을 벗어버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또 대부분의 배우들은 비정규직으로
연간 수입이 5천 달러에 불과해서 식당 웨이터, 판매점 계산원, 술집 바텐더 등으로
생계를 꾸려가는 배우들이 많다는 점도 주목할 대목이다. 오직 박수받는 한 순간을 위해
모두가 자신의 삶 전체를 쏟아 붓는다. 나는 국민학교 시절 성적이 신통하지 못했다.
잘했던 기억이 별로없다. '친구'녀석이 통신표에서 ‘수(秀)’를 셀 때마다 이단옆차기로
넘어 트리고 싶었다. 한마디로 ‘수(秀)’ 공장같았다.
하지만 세상을 살다보니 ‘수(秀)’가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다. 우면 어떻고 미면 어떤가?
어차피 한번 주어진 삶을 살다가면 그것으로 끝이다.
법정 스님은 "투철한 자기 결단도 없이 남의 흉내나 내는 원숭이 짓 하지 마라."고 했던가?
나는 내 자신의 길을 나답게 갈 것이지, 그 누구의 복제품이 되려는 생각을 버린지 오래이다.
홀로 있어도 의연하고, 늘 한자리에 서 있는 나무처럼 변하지 않는 삶의 진리와 일관된
철학을 만들고 싶은 생각이 가득하다. 그 전엔 그렇게 살지 못했기에 이제는 가능하면
남에게 민폐를 끼치거나 도움을 받지 않으려 결심했다. 내가 근래 깨달은 것은 '보는 관점'에 따라
인생은 달라진다. 자신이 가장 불행한 사람이라고 여길 때 더 가련한 사람이 있기 마련이고
행복이 넘친다고 할 때 정말 천국처럼 사는 사람도 있다. 나는 어떤 문제를 가지고 조언을 구하는
사람에게 가급적 말수를 아낀다. 자칫하면 ‘눈치 없는 인간’ 내지는 ‘감(感) 떨어진 꼰대’로
낙인찍히기 딱이기 때문이다. 먼저는 내 문제도 해결하지 못하고 戰戰兢兢할 때가 많기 때문이고
관점이 다르면 아무리 보편적인 이야기일지라도 상대방에게 도움이 되지 않을게 뻔하기에
말을 삼간다. 모두가 ‘돼지’라면 살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돼지 다리가 짧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별로 없다. 돼지에 개 정도의 다리만 달아줘도 그렇게 비대해 보이지 않는다. 다리가 짧으니까
몸집이 뚱보로 보인다. 시점을 바꿔 보면 대상이 달라지는데 사람들은 눈에 보이는대로
자기의 느낌을 중요시하며 근시안적으로 살아 간다. 나 역시 한동안 신세타령에 젖어 살아왔다.
불행한 사람을 못보아서이지 나보다 훨씬 곤고함을 느끼며 사는 사람도 많을테지만 잘나가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처지를 비관한 적이 많았다. 연암(燕巖)선생은 세상에 사물을 대하며
"귀하다고 해서 지나치게 좋아해서도 안 되고(貴不可偏愛) 아무리 하찮다고 해서
지나치게 버려두어도 안 된다(賤不可偏棄)"고 하였다. 나는 근래 세상을 통달한 건 아니지만
자연을 바라보면서 많은 걸 배우고 있다. 세상 인심이란 것도 그렇고 인간관계라는 것도
알고보면 내 마음속에서 생성되고 소멸된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송포항에서
전북 부안군 변산면 대항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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