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16년 광해군 8년. 전국에서 과거 시험을 치루기 위해 유생들이 몰려들었다.
그런데 과거와는 달리 최종 논술문제인 '책문'은 정치 현안에 대한 해법을 묻는
예년의 출제 경향과는 달리 다소 감상적이고 회한마저 서려 있는 명제를 제시했는 데,
섣달그믐 날의 '서글픔'에 관해 추론하라는 것이었다.
"가면 반드시 돌아오니 해이고, 밝으면 반드시 어두워지니 밤이로다.
어렸을 때는 새해가 오는 것을 다투어 기뻐하지만, 점차 나이를 먹으면
모두 서글픈 마음이 드는 것은 무엇 때문인가?"
이날 그럴듯한 답변으로 급제해 인조 때까지 벼슬을 지낸 이명한은
"네 계절이 번갈아 갈리고 세월이 오고 가니
우리네 인생도 끝이 있어 늙으면 젊음이 다시 오지 않습니다.
역사의 기록도 믿을 수 없고 인생은 부싯돌의 불처럼 짧습니다.
100년 후의 세월에는 내가 살아 있을 수 없으니 손가락을 꼽으며
지금의 이 세월을 안타까워하는 것입니다."라고 적었다.
천년만년을 살 것 같이 설쳐도 백 년은 커녕 밤새 '안녕'할지도 알 수 없는 것이 사람 사는 일인데
그 꿈 못 깨고 깨춤을 추다가도 세모에는 모두 숙연해지는 꼴이 예나 지금이나 다를 바 없나 보다.
무심한 세월은 빠르기도 하다. 세월은 흐르는 물과 같고, 쏜 화살 같다고 하는가 하면,
좁은 문틈으로 달리는 말을 순간 보는 것처럼 휙 지나간다고들 한다.
그렇다. 2024년 새해가 엊그제 같은데 벌써 40일이 지나 버렸다.
어렸을 때는 더딘 시간을 탓하며 빨리 시간이 지나 어른이되길 고대했으나
이젠 숨이 차오를 지경인 데, 시간이 멈추질 않는다. 너무 빨라 정신이 없을 정도이다.
서글픔까지 거들먹거릴 필요는 없지만 설날이라고 해서 마냥 좋은 것만은 아닌 것 같다.
설날에 떡국을 먹는 것은 ‘순백의 떡과 국물로 지난해 묵은 때를 씻어버리고
하얗고 뽀얗게 새롭게 태어나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
또한 ‘가래떡처럼 재산을 죽 늘려가라.’는 뜻으로 가래떡을 쓰는 것일게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청원군 문의면 대청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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