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이란다. 가을이 보이는 것이다.
단풍으로 물들어 가는 산에서, 아침저녁으로 어깨를 움츠리며 걷는 샐러리맨의 표정에서,
그리고 화사(華奢)한 햇빛을 받아 황금벌판에서 가을이 보이는 것이다.가을이 들린다.
귀뚜라미의 가냘픈 소리에서, 바스락거리는 낙엽소리에서, 그리고 바람소리에서 가을이 들리는 것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은 한낱 옛이야기일 뿐이다.
지금은 아무도 가을을 듣고, 가을을 보지도 않는다. 볼 수도 없고 들을 수도 없는 게 도시의 가을이다.
나무들은 단풍이 지기도 전에 시들어 가고 있다. 아무 곳에서도 이제는 귀뚜라미 소리를 들을 수 없다.
낙엽도 가을의 낭만(浪漫)이나 감상을 조금도 불러 일으켜 주지는 않는다.
도시의 포도(鋪道)는 완전히 가을을 잃는 것이다. 그러나 가을이란 본래가 느끼는 것이다.
보는 것도 듣는 것도 아니다. 불현듯이 서글픔을 느낄 때, 가을은 우리 곁에 있는 것이다.
시인(詩人)들이 에부터 단장(斷腸)의 애수(哀愁)에 젖은 노래들을 가을에 즐겨 부른 것도 이 때문이라 할까.
/상전간월광(牀前看月光) 의시지상상(疑是地上霜)/
거두망산월(擧頭望山月) 저두사고향(底頭思故鄕)/ 이백(李白)의 오언절구(五言絶句)다.
이 詩도 가을에 李白이 읊었던 게 분명하다. 이런 감상(感想)에 젖게 만드는 것은 가을 달 이외에는 없기 때문이다.
같은 가을달이라도 9월과 10월과는 다르다./이슬과 감미(甘美)로운 과실(果實)이 여무는 계절이여.....,
/ 이렇게 ‘키츠’가 노래한 것은 9월이 가을이지 10월은 아니다. /우울(憂鬱)한 나날, 1년 중 가장 슬픈 계절이 왔다.....
/고 ‘브라이언트’가 노래한 가을이 바로 10월부터를 두고 한 노래에 틀림없다.
같은 사과라도 9월의 사과는 그저 탐스럽기만 하다.
그러나 10월의 사과는 그 아삭거리는 차가운 감촉(感觸)이 고독(孤獨)을 씹는 것 같이만
느껴지게 만들어 주는 것이다. 도시의 외로운 게 가을인가 보다. 서글픔은 안겨 주는 게 가을인가 보다.
그런 가을을 두고 누가 아름답다고 말했을까. 공연한 생각들만을 안겨주는 가을을 누가 아름답다고만 했을까.
/미인위황토(美人爲黃土) 황내분무가(況乃粉無暇).....
이렇게 두보(杜甫)는 인생의 허무함을 가을에 노래했다.
가을이 아니라도 허무(虛無)를 못 느꼈을 杜甫는 아니었으리라.
그러나 가을에 더 뼈저리게 그런 느낌을 사람들은 갖게 되는 게 보통이다.
백조(白鳥)는 끝없이 높이 날고 외로운 배 홀로 떠내려가네.
하찮은 세상살이 별것도 없는데 공명(功名)찾아 반세(半世)를 허둥댔다니......
이런 후회(後悔)를 김부식(金富軾)에게 안겨 준 것도 가을이었다. /가을이 짙어져간다.
가을이 처량함을 왕손(王孫)은 모르는지/(陳溫) 그저 짙어만 간다./ 아무 느낌도 없이----,
모두가 행복한 王孫들인가.
#당시(唐詩)를 인용하다보니 난해한 문장이 있어 註解를 달았습니다.
/상전간월광(牀前看月光)/ 의시지상상(疑是地上霜)/
*/침상에 기대어 달을 보니/ 서리 내린듯 하얗구나/
거두망산월(擧頭望山月) 저두사고향(底頭思故鄕)/
*/머리들어 산위의 달을 보고/ 머리숙여 고향을 생각하네/
/미인위황토(美人爲黃土) 황내분무가(況乃粉無暇).....
*/미인들 모두 누런 흙되었거니/ 하물며 그 거짓된 화장이야/
명예(Noblesse)만큼의 의무(Oblige)┃詩人이 보는 世上┃2021-09-18 (0) | 2022.11.01 |
---|---|
가을이 오는소리┃詩人이 보는 世上┃2021-09-17 (1) | 2022.11.01 |
나이는 어쩔 수 없는 것 같다┃詩人이 보는 世上┃2021-09-15 (0) | 2022.11.01 |
베품이 절실한 시기다.┃詩人이 보는 世上┃2021-09-14 (1) | 2022.11.01 |
노추(老醜)의 그림자┃詩人이 보는 世上┃2021-09-13 (0) | 2022.11.01 |
댓글 영역