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에 이어 오늘도 큰 눈이 내리고 있다. 가로등이 밝지 않던 시절에도 눈 내린 밤은 환했다.
열심히 눈을 치운 건 어른들 몫이었고 어린 우리들은 모처럼 밤중에 동네 친구들과 만나
눈싸움을 하며 몸에서 김이 펄펄 나도록 놀았다. 하지만 그리 오래되지 않은 것 같은 데,
눈이 쌓이면 마을 사람들이 함께 나와 같이 치울 여유가 사라져 버렸다. 시골엔 젊은 사람이 없기에
저절로 녹기 전까지는 이웃집도 나들이 하기가 어렵다. 도시도 마찮가지이겠지만 틈과 여유가
사라진 자리에 염화칼슘이 들어왔다. 봉숭아꽃 물들이며 그토록 기다리던 첫눈이 반갑기 이전에
가로수의 고사를 염려해야하는 건 정말이지 낭만적이지 않다. 더불어 살기 위해 필요한 여유와 틈이
정말 아쉽다. 대지를 어루만지는 눈은 축복인 양 우리의 가슴과 영혼에다 노래를 부르며 위로한다.
한편의 시를 만들고 싶었지만 작기장에 끄적거리다 그만 두었다.
가슴에도 머리에도 만물을 일신(一新)하는 사색의 눈이 내릴 거라는데 몸이 따라 주질 않는다.
정말 심정적으로 바쁜 시기인데 내일까지 눈이 내릴 거란 예보가 나왔다.
겨울이면 어김없이 몇 차례 폭설을 맞이하던 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기에 눈이 싫진 않지만
요즘은 너무 눈이 내린다. 눈이 한번 내리면 무릎이 푹푹 빠질 정도로 쌓이니 어린 우리들도
마당의 눈을 함께 치워야했었다. 내 집 눈을 어느 정도 치우고 나서는 어른 아이 할 것 없이
골목길로 쏟아져 나왔다. 폭설이 내리게 되면 다음날 통행이 불편하니 동네주민들이 모두
눈삽과 대야를 들고 나와 눈을 치웠다. 몇일동안 미세먼지로 인해 호흡하기가 곤란할 정도로
공기가 혼탁했기에 비던 눈이던 무언가 내려야 해결해야 될 것 같은데, 일단 가볍게 스치듯
지나갔으면 좋겠지만 설명절인 오늘 지금까지 내린 눈보다 더 내릴 거라니 걱정이 아닐 수 없지만
어차피 하늘의 조화이니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하염없이 눈이 내리니 차가운 대지를 압도하는
백설위에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사람에 대한 그리움과 세상의 걱정거리로부터 멀어진다.
아마도 눈에게는 속사(俗事)로부터 사람의 마음을 갈라놓으려는 신비한 힘이 있나보다.
회색 빛 도심에 내리는 눈송이들은 강렬한 흥미의 대상이어서 바라보는 것만으로 능히 한권의 시집을
엮을 수 있는 시심이 떠오를 것이다. 자연계를 방황하는 영혼들 모두가 하늘에서 쏟아져 내리는
거룩한 환희처럼 정겨운 희망으로 피어났으면 좋겠다. 모차르트, 베토벤과 함께 고전주의 마지막
작곡가인 슈베르트를 사람들은 겨울과 잘 어울리는 작곡가라고 말한다.
그의 노래에 묻어나는 서정성에서 겨울의 쓸쓸함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겨울의 혹독함 속에서 슈베르트의 음악을 들어보는 것은 어떨까?
원래부터 세상사는 인인성사(因人成事)였다. 남의 인연에 기대 일이 이루어진다는 말이다.
세상을 살면서 독불장군이란 없다. 다만 그런 것처럼 착각할 따름이다.
독불장군이란 혈기방장한 젊은 시절에나 가당한 말이다. 점차 나이를 먹으면서 서로가 서로의
머리를 깎아주는 사회가 좋은 사회라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 말은
그 방면에서는 제일 잘하고 밀접한 관계가 있는 사람일지라도 자기 자신의 일을 처리할때는
할 수가 없거나, 잘 못하거나 또는 제대로 처리할 수 없는 경우들에 보통 사용하는 속담이다.
나는 지금까지 숱한 세월을 살아오면서 남의 어려운 사정을 잘도 이해하고 도와 주었지만
정작 내 문제를 가지고 누구에게 하소연하거나 손을 내밀지 못하고 살아왔다.
그간 많은 사람들을 만나 문제 해결을 위해 기도하고 상담해 왔지만 '중이 제 머리 못 깍는다'는데,
나는 스스로 머리를 깍아보려 몸부림을 치다 득병하고야 말았다.
내 스스로의 머리를 깍으면서 용캐도 험한 세상을 견디어 온 것 같다.
남에게 손벌리는 재주가 없기에 주제넘은 짓은 아예 하지 않으려 한다.
변화 그 자체가 절대적인 善이라 말할 수는 없지만 세상은 우리가 알든지 모르든지
조금씩 변하는 것이고 그 변화는 멈출 수도 없고, 막을 수는 더더욱 없다.
그래서 변화에 매우 수동적인 사람들은 옛것의 가치를 지킨다는 이름으로 保守라고 말한다.
그 단어 속에는 극도의 두려움이 내재되어 있는 것이다. 변화를 원하는 심정은 동일하지만
변화가 가져올 여러 상황들에 대한 대처가 난감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힘있게 도는 팽이라 할찌라도 팽이채를 거두는 순간, 힘없이 비실대다 쓸어지고 만다.
그러기에 "늦어도 안하는 것보다 낫다(Better late than never)"는 좌우명을 만들고 몸부림을 친다.
때로는 늦었다는 생각이 들 때면 아예 포기하는게 현실적이고 경제적이란 생각이 들 때도 있다.
지금 아무리 몸부림을 쳐봐야 세우다 만 망대란 손가락질을 당할게 뻔하기 때문이다.
나는 내 한계를 잘 알고 있다. 요즘 날고 뛰는 젊은이를 당할 수가 있겠는가?
삶의 노하우는 물론 손재주도 빈약한데 어찌 경쟁할 수 있으랴!
머지 않아 42.195km를 2시간대에 달리는 마라토너가 나올지도 모르겠다.
나에게는 불가능한 도전이다. 하지만 나는 끝까지 종주할지는 모르지만 몇시간이건,
기록과는 상관없이 하여간 종주해 볼 허황한 생각으로 이미 출발했다.
지금의 내 처지를 누구에게도 밝히지 않는다. 속마음을 들어내는 경우는 극히 드물고
묵묵히 내가 가야 할 길이라면 끝까지 갈볼 생각이다. 비가 내려도 피하려 하지 않고
아파도 아픈 기색을 들어내지 않기에 속뜻을 짐작하기가 쉽지 않을 것이다.
나는 언제부터인가 "사랑은 '나의 바람'을 강요하는 것이 아니라 '너의 희망'을 읽어내는 것"이라고
정의를 내렸다. 행복을 유지하는 조건은 '차이에 대한 존중', 이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하는
최고의 길은 '진솔함'이라고 믿었기에 너의 희망에 주안점을 두기 시작했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수내동의 겨울밤
경기도 성남시 분당구 수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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