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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로인생(草露人生)┃詩人이 보는 世上┃2024-10-12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10. 12. 0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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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갑이 가벼워지는 것보다 시간의 길이가 줄어들고 있다는 걸 생각하면 정신이 번쩍든다.

인생을 일컬어 '초로인생(草露人生)'이라 했던가? 인생이란 풀잎에 맺힌 이슬과 같다.

인생의 길이가 이슬이 맺혀있는 시간과 같음을 수사적으로 은유한 표현이다.

이슬은 공기 중에 있는 수증기가 풀잎과 맞닿으면서 만들어진 물방울이다.

이슬은 해가 뜨면 다시 수증기로 돌아가거나 풀잎에서 이탈되어 이슬의 생명을 잃는다.

맺혔는가하면 벌써 사라진 것이 바로 이슬. 그래서 인생은 이슬처럼 알지 못하는 가운데 지나

가니 '덧없다'했다. 이슬은 해가 일찍 뜨면 더 빨리 사라지고 늦게 뜨거나 구름에 가릴 경우

조금 견딜 수 있다. 하지만 그 차이가 도토리 키 재기 아닌가? 태생적으로 짧은 것은 매 한가지다.

나는 텅 빈 고목나무 앞에서 나의 빈 마음과 마주 한다. 조급한 마음과 집착을 버리며,

사사로운 욕심과 사소한 것들로부터 관대해지라며, 비움과 채움을 알게 한다.

어떻게 모진 세월을 견디어 왔는지 경이로운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치열하게 살아왔을 것이다. 지금의 내 모습이 바로 그러하다는 생각이 든다.

속이 텅빈 고목이지만 작게라도 이파리를 만들어 내고 존재를 부각시키려 안간힘을 쓰는 모습이

약간 닮았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아마도 내가 아무 일도 안하고 가만히 있었다면

나는 폐인이 되었을 것이다. 젊어서 열심히 살지 못했으니 지금이라도 남들보다 더 삶에 열중하려

마음먹었다. 때로는 삶에 부침이 심할 땐 내 인생도 歲暮가 되었는가 하는 생각이 들 때도 있고

쓸모가 없는 존재인가 하는 자괴감이 들 떄도 있다. 하지만 쓸모없는 인생이란 없다.

여의도는 원래 모래땅이었다. 오랫동안 사람들은 그 땅을 보면서 쓸모없는 땅이라고 하였다.

여의도라는 이름의 유래는 다음과 같다고 한다. 한 임금이 여의도를 보고 별로 사용가치가 없는

땅이라고 여겨서 신하에게 네(汝: 아랫사람에게 가볍게 부르는 호칭) 마음대로(意) 하라고 하면서

주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랬던 그 땅이 지금은 가장 가치 있는 땅이 되었다.

남들은 쓸모없다고 여겼지만 가치 있는 땅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해 개발한 사람에 의하여

새로운 가치를 얻게 되었다. 지금 내가 가진 것이 없다한들 슬퍼하거나 노하지 않아도 좋다.

철학자 테모크리토스는 '마음의 평정을 얻고 싶다면 많은 일을 하지 말라'고 말한다.

그러나 그것보다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좋지 않을까? 필요한 일만 하라.

사회적 동물로서의 이성이 요구하는 일만을 이성에 따라 행하라. 이렇게 함으로써 반드시

해야 할 일만 하는 데서 오는 마음의 평정을 얻을 뿐만 아니라, 또한 그것을 휼륭하게

수행함으로써 오는 마음의 평정도 얻을 수 있다. 사람은 자기가 있어야 할 자리와

사명적 존재라는 걸 자각하는 순간 무한 가치를 지닌다. 남을 흉내낼 필요가 없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상원사 꽃무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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