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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 통하는 일┃詩人이 보는 世上┃2024-05-07

2024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4. 5. 7. 11: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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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어렸을 땐 '순종이 제사보다 낫다'는 말이 유행이었고,

교회와 목회자에게 순종하는 건 미덕 중에 미덕이라는 생각을 가진 사람들이 많았다.

누구에게 순종하느냐는 건 중요하지 않았다.

주의 종들에게 순종하는게 믿음좋은 사람이라고 강요하던 시대였다.

지금은 주의 종이란 말조차 거부감을 느끼는 사람들이 많다. 왜 이리 되었을까?

시대 탓인가. 18홀을 다 소화하느라 어머니의 임종을 못보았다는 친구가 있는 데,

요즘도 일년에 10여차례 이상 필리핀에서 골프를 즐긴다고 한다.

골프 투어는 일반 페키지 여행보다 두세배는 비싼편인 데, 그래도 비싼 여행 티켙을 감내하며

필리핀행을 고집하는 이유는, 한국은 잔디가 잘 자라지 못하는 환경이기에 각종 성장 홀몬, 농약을

과다하게 뿌린다 하여 건강을 생각하여 좀 비용이 많이 들지만 해외로 원정을 나간다고 한다.

몇번 국가 경제를 들먹거리며 아직은 귀족 스포츠이지만 한국에도 골프장이 남아 돌아

예전과는 달리 회원권이 없어도 예약할 수 있는 데, 굳이 해외 원정을 뻔질나게 나가야 할

필요가 있느냐고 말을 해도 그 맛에 길들여져 아예 들으려 하지도 않는 친구이다.

 귀곡천계(貴鵠賤鷄)란 말이 있다. 멀리 있는 고니를 귀중히 여기고 가까이 있는 닭을

천하게 여긴다는 말이다. 공항에 내리자마자 호텔로 짐을 보내고 골프장으로 직행할 정도이니

더이상 만류하면 우정에 금이 갈까봐 일체 입을 다물고 말았다.

입을 닫는 순간 마음의 문도 닫히고 말았다. 말이 안통하고 말귀가 없다는 건 비극적인 일이다.

나도 일년에 한두번은 해외 여행을 하는 편이지만 나라 밖으로 나갈 때마다

가장 곤혹스러운 것은 음식때문이 아니라 언어의 불통이다. 내 외국어 실력은 한마디로 말하면

초급자 수준인 데, 지금에 와서 다시 시작하기에는 늦은 것 같고,

보디 랭귀지도 일종의 비언어적 의사소통의 한 종류로, 몸으로 의사소통을 하는 것을 말하는거라는

뱃짱으로 거침없이 활보하지만 부끄러울 때가 많다. 하지만 언어가 달라 뜻이 통하지 않는 건

문화적인 차이기에 어느 정도 위안이 되는데 같은 교회안에서 같은 교단안에서 이렇게 생각이 다른

사람들이 많은지 이해하기가 어렵다. 외국인을 대하는 것보다 더 서먹서먹한 사람들이 많다.

교회와 교회, 목사와 목사간에 대화의 단절은 심각한 수준이다. 적대시하지 않는 것만 해도

다행일 지경이다. 사도행전 2장에 보면, '그 때에 경건한 유대인들이 천하 각국으로부터 와서

예루살렘에 머물러 있더니 이 소리가 나매 큰 무리가 모여 각각 자기의 방언으로 제자들이

말하는 것을 들었다' 했다. 그리고 예루살렘에 모여와 있다가 제자들의 증언을 들은 사람들의

출신지역을 열거하는 9-11절 사이에서 언급된 지역들인 바대, 메대, 엘람, 메소보다미아,

유대, 갑바도기아, 본도, 아시아, 브루기아, 밤빌리아, 애굽, 리비야, 로마, 그레데, 아라비아 등은

가히 당시의 천하 사방 각지를 다 일컫는 것이라 할 수 있다. 성령의 역사는 말이 통하는 역사이다.

말이 안통하는 것보다 더 삶을 답답하고 짜증나게 하며 세상을 살고 싶지 않게 만드는 것도 없을

것이다. 그래서 언어는 있어도 서로서로 사이에 말이 안 통하면 사람 사는 것이라고 할 수 없다.

그런데 같은 언어를 쓰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말이 안 통하는 일이 얼마든지 있다는 데

심각성이 있다. 한국말을 쓰는 같은 국민들 사이에서도 말이 안 통하는 일은 수없이 많다.

기성세대와 젊은 세대 사이에 말이 안 통하고 여자와 남자 사이에 말이 안 통한다.

이북사람과 이남사람 사이에 말이 안 통하며 영남 사람과 호남 사람 사이에 말이 안 통한다.

국민과 정치하는 사람들 사이에 말이 안 통하고, 여당과 야당 사이에도 말이 안 통한다.

기업가와 근로자 사이에 말이 안 통하며 선생과 학생 사이에 말이 안 통한다.

이렇게 볼 때 오늘날 우리가 살고 있는 세상은 인간 상실의 세상이라 하지 않을 수 없다.

나의 친구만 해도 이미 같이 서울대학을 졸업했지만 동질감을 찾아 볼 수 없는 지경으로

치닫고 있다. 선후배를 찾아 볼 수 없고, 동역자 의식은 엿바꿔 먹은지 오래이다.

영어 좀 못해도 불편할뿐 살아가는 덴 별 지장이 없다. 그러나 그리스도인 끼리 말이 통하지 않아

반목하고 질시하며 마음을 닫고 산다면 주님께선 '이런 웃기는 짬뽕아!'라고 버럭 소리지르실게

뻔한 데, 어쩌려고 그러나? 서로가 말이 다를 때에는 누가 중간에서 통역을 해주면 되는데

통역해주는 사람이 없으면 말이 안 통할 수밖에 없다. 선하고 진실한 중재자는 없고

양쪽을 이간시켜서 오히려 자기 이득을 챙기려하거나 이간질 자체를 즐기는 사람들로

가득한 세상은 정말 살기 힘든 세상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사선대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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