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제부터인지 가봐야 한다면서 찾지 못한 곳이 있었다. 바로 박경리 선생의 옛집이다.
선생이1980년부터 살던 집은 원주 시내에 위치한 박경리 문학공원 내에, 1998년부터 2008년까지 기거했던 집은
흥업면의 토지문화관 내에 원형 그대로 잘 보존되고 있었다.
문학공원 내에 위치한 760여 평의 자택과 작은 동산은 자연과 함께 살고자 하는 선생의 뜻이 그대로 반영된 듯싶었다.
집안의 연못과 작지 않은 뜰에서 바라다보이는 치악산의 전경은 눈앞으로 바로 끌려들어 왔고,
집 옆의 자그마한 동산은 아름답고 정겨운 시골의 분위기가 그대로 녹아있었다.
이어서 들른 토지 문화관은 자연과 더욱 가까이에 있었다. 아예 숲속의 집이었다. 치악산 중턱에 터를 잡아
전망이 훌륭했고, 주변의 소나무와 조화를 이루어 주변을 걷는 내내 마음이 편안하고 차분해졌다.
두 집 모두 산에 기대어 있다는 공통점을 가진 채로.
두 집에는 또 다른 공통점이 있었다. 적당한 크기의 텃밭이 집 바로 옆 가까이에 자리를 잡고 있다는 것이다.
텃밭에서 밀짚모자를 쓰고 손에는 호미를 쥐고 채소를 가꾸며 땀 흘리는 선생의 모습이 보이는 듯했다.
옆에는 고양이가 한가로이 누워있고. 아마 생태운동이 시작되는 지점이리라.
신식 여성이며 엘리트 여성이란 사실은 선생의 고운 외모와 사용하던 고급 진 물품들
그리고 옛 사진을 통해 알 수 있었다. 전시실의 전시품목들이 그것을 여실히 보여주고 있었던 거다.
사진 속에서 선생의 가난하고 찌그러진 삶의 모습을 볼 수 없어 다행이다 싶었다.
어려운 시절이었으니 선생이 겪었을 고통 또한 컸을 터이지만
선생의 온화한 미소 속에 그 모든 것은 묻힌 듯했다.
문득 먹고사는 일이 얼마나 중요한 일인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마 소설 "토지"속 가난이 떠올라서였을 것이지만
시대가 변해도 빈곤은 늘 존재하니 드는 생각이다. 특히 요즘처럼 코로나19로 힘든 여건에서 문화예술인이 겪는 고통은
불문가지일 터, 배를 곯아가며 어찌 문학이고 예술이 나올 수 있겠느냐는 의문이 들었던 것이다.
그래도 세상이 많이 좋아진 건 분명한 듯했다. 토지문화관을 둘러보던 중이었다.
기숙사 형태의 큰 건물이 눈에 들어와 용도를 알아보았다. 토지문화재단에서 등단 문인을 대상으로
문인 창작공간을 무료로 3개월간 지원한다는 것 아닌가. 선생의 뜻이었다는 사실에 더 놀랐다.
물론 다른 누군가의 기부가 합쳐졌기에 가능한 일이겠지만.
집으로 돌아오는 길 원주는 선생께 큰 빚을 지고 있구나 싶어졌다.
(아니 우리나라 온 국민이 빚을 지고 있다가 맞을 것이다.) 물론 다른 어떤 지역이라도 뛰어난 지역의 어른에게
빚을 지고 있는 후손들이 한둘이 아니지만 말이다. 예를 들면 옆 마을 평창 봉평의 이효석 선생을 보던,
춘천 실레마을의 김유정 선생을 봐도 그렇다.
참 행복한 하루였다. 한복을 곱게 차려입고 안경을 끼신 채 원고지에 글을 써 내려가는 사진 속 선생이
우리를 보고 웃고 있었다. 게다가 노년의 선생은 우리에게 당신의 시까지 한편 읽어 주셨으니. 무엇을 더 바라랴.
선생의 유고 시집 "버리고 갈 것만 남아서 참 홀가분하다" 중 "산다는 것"이다.
체하면
바늘로 손톱 밑 찔러서 피내고
감기 들면
바쁜 듯이 뜰 안을 왔다 갔다
상처 나면
소독하고 밴드 하나 붙이고
정말 병원에는 가기 싫었다
약도 죽어라고 안 먹었다
인명재천
나를 달래는 데
그보다 생광스런 말이 또 있었을까
팔십이 가까워지고 어느 날부터
아침마다 나는
혈압약을 꼬박꼬박 먹게 되었다
어쩐지 민망하고 부끄러웠다
허리를 다쳐서 입원했을 때
발견이 된 고혈압인데
모르고 지냈으면
그럭저럭 세월이 갔을까
눈도 한쪽은 백내장이라 수술했고
다른 한쪽은
치유가 안 된다는 황반 뭐라는 병
초점이 맞지 않아서
곧잘 비틀거린다
하지만 억울할 것 하나도 없다
남보다 더 살았으니 당연하지
속박과 가난의 세월
그렇게도 많은 눈물 흘렸건만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잔잔해진 눈으로 뒤돌아보는
청춘은 너무나 짧고 아름다웠다
젊은 날에는 왜 그것이 보이지 않았을까
강원도 원주시 토지길 1 박경리 문학공원 朴景利文學公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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