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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행착오 ┃詩人이 보는 世上┃2025-03-07

2025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5. 3. 7. 15: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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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에 오르기는 힘들고 산을 내려가기는 더 어렵다'는 말에 공감한다.

힘겹게 달려왔지만 마지막이 더 중요하다. 많은 짐을 짊어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작은 짐을 지고 산에 오르는 사람이나 그 나름대로 힘들기는 마찬가지다.

능력 있는 사람에게나 능력 없는 사람에게나, 부자에게나 가난한 사람에게나

인생길이 비슷하게 어렵듯이 내 짐만 유독 무겁다는 생각을 버릴 수만 있다면

인생길의 불행을 꽤 많이 덜 수 있을 것이다. 이렇게 말한 이가 베토벤이었던가?

"불행이란 이상스러운 것이라서 사람들이 그것을 이야기 할수록 불행은 점점 커진다"

그래서 나는 비로써 불행하다는 생각을 버리고 현상에 만족하는 훈련을 하고 있다.

인생을 망치는 지름길은 기고만장이다. 자고로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요 넘어짐의 앞잡이다.

나는 남들이 나를 추월하던지 말던지 나는 내 길을 가려 작정했다.

나는 인생 2모작을 시작하면서 내가 필요한만큼만 이익을 내려고 작정했다.

이걸 호구지책으로 삼으면 인생이 초라해 진다. 내가 하고 싶은 일, 아무 할 일이 없어

자식들에게 민폐를 끼치고 후배들의 사업에 참견하는 노털이 되지 않는 것 만큼이

내가 원하는 수준이다. 유방과 함께 한나라를 개국한 공신이었던 장량과 한신은

권력과 미래가 보장된 위치였다. 장량의 부인과 아들마저 ‘이제 고생 끝 부귀영화의

시작’이라며 좋아했다. 그러나 장량은 결단했다. 모든 것을 놓고 초야로 돌아갈 것을 말이다.

그런데 역설적이게도 그 결단으로 인해 그와 그의 가족은 피의 숙청을 면할 수 있었다.

장량은 ‘박수칠 때 떠나라’를 몸소 실천한 고차원적 처세술의 주인공이었던 셈이다.

하지만 이와 반대로 한신은 유방 곁에 계속 남았다. 결말은 모두가 알다시피  한신의 처형으로

끝난다. 개국 공신이자 최 측근인 한신은 결국 유방으로부터 처형 당하게 된다.

장량은 이미 알고 있었다. 모든 것을 이루고 나서 '떠나야할 때'를 말이다.

그러나 '떠나야할 때'를 몰랐던 한신은 유방에게 제거해야 할 역적으로 남게 되었다.

젊은 시절, 내 앞에 감히 얼쩡거리는 차량이 없었다. 하지만 근래는 내 뒤를 달리는 차는 거의없다.

백미러에 금방 보이던 차들이 내 옆을 스쳐 멀찍이 추월해 가버린다.

누구나 나를 추월해 버린다. 이게 어디 운전뿐인가. 인생도 마찮가지이다.

신바람을 내며 추월하는 바람 소리가 요란했다. 그럴 때마다 심장이 쿵쿵거렸고 얼굴이

붉그락 해졌었다. 정없이 나를 추월하는 걸 보며 빙그레 미소를 지을 수 있는 여유가 생겼다.

이제는 나를 추월하는 사람을 보며 분개한 마음이 들지도 않는다. 젊었을 땐 추월당하는 걸

수치로 여겼지만 지금은 아니다. 차라리 추월 당하는 게 편하고 순리이다.

이제는  어린 세대들이 날 추월해 주길 바라고 나보다 나은 삶을 살았으면 하는 바램을 가지고 있다.

나처럼 살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강열하다. 젊기에 가능한 이야기이다. 젊음이란 그런 것일게다.

하지만 나이 먹어서도 누군가를, 무엇인가를 추월하려고 하면 심신이 고달프다.

인생의 모든 고통의 문제는 추월하려니 생기는 문제이다. 왜 이리 사람들은 서두르는걸까?

기다림이 사라져 버렸기 때문이다. 빠름과 바쁨이 미덕인 사회처럼 이렇게 살지 않으면

남들보다 뒤쳐질까 불안해 하면서 달려가는 것이 우리 모습이 아니던가?

자신을 온전히 떠나기는 凡人으로서 힘들기에 자신의 그림자라도 보기 위해서

프랑스의 사회철학자 피에르 쌍소의 '느리게 산다는 것의 의미'에서 그 희미한 답을 찾고 싶다.

‘가야할 때가 언제인가를 분명히 알고 가는 이의 뒷모습이 얼마나 아름다운가’라는

시구의 대상은 낙화보다 낙엽이 더 잘 어울린다. 단풍만큼 떠나는 자의 뒷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또 있을까. 한여름 청록의 무성함을 한껏 자랑하고, 떠나야 할 때를 알고 가슴 속 남겨둔

마지막 정열을 불사르는 모습을 보면 위대함을 느끼게 된다. '박수 칠 때 떠난다'는 말은

대중들이 긍정적인 평가를 해주는 가운데 미련 없이 자신의 일을 그만두고 물러나는 것을

표현한다. 히딩크 감독이 그러했고, 넬슨만델라 대통령이 그러했다. 박수 칠 때 떠나지 못한

경우로는 흥행하는 드라마나 영화가 관객과 시청률이 높다하여 2편 3편 시리즈로 무리하게

내놓아 전편의 인기에 편승하려다가 오히려 인기가 마이너스가 되는 경우가 있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추월에서 초월로 가는 것'이 해답이다.

지금까지는 ‘남을 앞지르고 이기는 것’을 성공으라 생각했다.

누구에게도 지길 싫어했다. 마치 고속도로 위에 주행선과 추월선밖에 없는 것과 같았다.

주행차선을 이용하는 건 어딘가 모르게 바보처럼 느껴지기도 했다.

조금 늦더라도 인생을 제대로 운전해야 한다. 내 능력에 알맞는 길을 선택하는게 중요하다.

이제는 추월선은 남의 차선이 된지 오래이다. 추월이 아닌 초월의 세상을 꿈꾸게 되었고,

이게 체질적으로 맞아 떨어지는 것 같다. 나는 자연속에서 살면서 한가지 깨달은 것이 있었다.

모든 자연은 자신의 때를 알고 있다는 사실이다. 동토의 땅에서도 새싹이 어김없이 나오고

철이되면 미련없이 자신을 희생하며 떠날줄 안다. 요즘은 한겨울에도 딸기와 수박, 포도 등

여름 과일을 원 없이 먹을 수 있는 시대지만 제철 과일이 최고이다.

인생을 살아보고 뒤돌아 보니 너무 많은 시행착오속에 살아 온게 비로소 눈에 보이기 시작했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대청호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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