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부러 고독해지길 바라는 사람이 없겠지만 계절은 우리를 우울하게 만들고 있다.
아무런 생각없이 사람이라면 몰라도 가을은 대부분의 사람들을 방황하게 만드는
슬픈 계절이다. 가을이기에 슬픈게 아니라 그간에 쌓였던 감정의 찌꺼기가
할아버지의 쌈지에서 나오는 구깃한 지폐처럼 너저분하게 쏟아져 나오기에 우울해 진다.
내가 살아가는 모습을 보면 본의는 아니지만 지나치게 'barricade'를 치고
산다는 생각을 가진다. 세상에 나와 살면서 필요에 의해 많은 인연을 맺고 살면서
하도 실망을 많이 했고, 그만큼 손해를 감수했으며, 그만큼 양보했으면 감동까지는 몰라도
값싼 동정이라도 할줄 알았는 데, 갈 수록 가관이란 걸 알면서 생긴 자구책이었다.
양보하면 할 수록 더 많은 걸 요구하고 더 희생을 강요하는 발상에 실망할 때가 많고
때론 충열된 눈으로 한동안 바라보다 깊은 한숨을 내쉬며 돌아설 때가 많다.
내가 몇번 밝혔지만 '親' 字에 대하여 점점 신뢰감이 사라지고 있다.
친(親) 字는 나무(木) 위에 올라서서(立) 아들이 오기를 바라보고(見) 있다는 의미이다.
목(木)과 입(立)과 견(見)이 합하여서 친(親) 자가 되었다.
나무 위에 올라가서 아들 오기를 바라다보는 부모님의 지극한 마음, 그것이 친(親)이다.
옛날 중국인들의 발상법(發想法)에 놀라지 않을 수 없다. 그것은 위대한 생각이요,
깊은 사상이다. 나는 친 자를 쓸 때마다 이 글자의깊은 뜻에 경의(敬意)를 표한다.
그런데 친해지면 사람들은 더 무례해진다. 친해지고 손해를 안본 경우가 드물 정도이다.
그렇다고 '間'을 뺴고 人만 있다면 그 살벌한 시대를 어떻게 살 것인가?
난 유연하게 살고 싶었다. 때로는 수양버들보다 더 흐느적거리며 살고 싶었고,
기계적인 삶에서 일탈을 꿈꾸며 살고 싶었다. 철저히 바보처럼 살고 싶었다.
그러나 바보가 된다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를 실감하며 아무나 바보가 되는게
아니라는걸 알게 될수록 외로워져만 갔다. 아무 말을 하지 않으니 바늘로 찔러도
이 사람은 통증이 없는걸로 인식하는 사람이 있다. 벙어리도 날 수 가는줄 아는데,
말 안하니까 정말 날짜 가는줄도 모르는 천치인줄로 착각하고 날 이용하려는
사람들이 있다. 난 그간에 많은 손해를 감수하면서도 사람만은 얻고자 했다.
얼마나 얻었느냐고 묻는다면 별로 내세울만한게 없지만
그렇다고 실망까지는 아니다. 요즘들어 지난날에 대한 향수가 진해지는 것 같다.
아마도 한쪽 귀를 자르고 붕대로 동여맨 자신의 자화상을 그렸던 천재 화가의
아품과 고독이 온 몸으로 느껴진다. 요즘 내 모습은 내가봐도 정상적이진 않은 것 같다.
반항심이 생기는듯 싶다. 그래서 인간(人間)으로 살기엔 내 수양이 부족한 걸 인정하고
인(人)으로만 살려 용트림을 한다. 그냥 고독하게 살다가 갔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모든 남자의 피(血)에는 고독이 흐르고 있다. 남자의 혈액형은 冬형이다.
애써 아니라고 부인해도 어쩔 수 없이 남자는 계절의 변화에 민감하고 흔들리게 되어 있다.
나는 이 고독을 즐기기로 했다. 이 땐 좀 외로워도 괜찮다. 윤동주도 고독했고,
천상병 형도 고독했고, 고호라는 사나이는 발작을 일트킬 정도로 고독했으며
예수 그리스도도 고독한 삶을 선택했다. 야곱이 얍복강에서 고독한 시간을 갖지 않았다면
그는 에서의 칼끝을 피하지 못했을 것이다. 반면 솔로몬은 고독을 싫어했기에
그 영화가 오래가지 못했다. 고호까지는 아니더라도 요즘 내 주변엔 이유없이
고독해 하는 친구들이 많다. 가을이 깊어가고 겨울이 되면 바바리코트를 입고
눈을 밟으며 우수에 젖은 눈빛으로 외롭게 길을 걷는 남성을 흔하게 볼 수 있다.
날씨도 스산한데 우울함에 괴로워하는 남성들의 모습은 안타깝기 그지없다.
정도가 심해 병적 상태가 되지 않더라도 누구나 가을이 되면 일조량이 줄고
기온이 떨어지면서 신경전달물질에 변화가 일어난다.
이런 계절엔 세로토닌이 감소하고 멜라토닌이 증가하는 데,
세로토닌 분비가 감소하면 남자든 여자든 어느 정도 우울감을 느끼게 된다.
얼마전만 해도 30도를 웃도는 날씨였는데 긴팔을 입지 않으면 안될 정도로
갑짜기 기온이 곤두박질했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전북 진안골의 가을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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