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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유불급(過猶不及)┃詩人이 보는 世上┃2024-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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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詩人全政文 2024. 3. 5. 00: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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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양화가 서양화에 비하여 더 편하게 느껴지는 것은 여백(餘白)이 있기 때문이다.

그 여백이야말로 창조적 공간이 되고 예술적 공간이 되는 것이다.

전체를 채우는게 아니라 약간의 공백을 두어 독자의 상상력에게 맡기는 기법이야말로

동양화의 진수(眞髓)였다. 사람이 살면서 자신의 능력 이상의 것을 얻는 것은 물론 좋은 일이다.

모두가 바라는 바이다. 그러나 부(富)나 높은 자리도 좋지만,

그 이전에 그렇게 행복하기 위해서는 자신의 깜냥과 그릇을 잘 살펴, 무리하지 않고

그칠 줄 아는 것도 필요할 것 같다. 즉 자신의 분수(分數)를 아는 것이 중요하다는 것이다.

진정한 술꾼은 만취(漫醉)하는 법이 없다.

가장 기분좋게 술을 마시기 위해서는 '약간 알딸딸하다 싶을 때'나 '조금 아쉽다 싶을 때'

잔을 놓는 것과 마찬가지 이치다. 때론 가지고 누리는 것이 그러지 않은 것만도 못 할 때가 많다.

논어의 선진편(先進篇)에 보면 과유불급(過猶不及)이라는 말이 있는 데,

정도를 지나침은 미치지 못함과 같다는 뜻으로, 중용(中庸)이 중요함을 이르는 말이다.

때로는 아쉽다 싶을 때 자리에서 물러나고 여유(餘裕)로움을 찾는게 중요한 데,

능력도 안되는 사람이 그 자리를 지키기 위하여 억척을 떨기에 초라해지는 것이다.

바쁜 생활 속에 마음의 여유를 찾기가 힘들다고 말하는 사람도 어렵지 않게 찾아볼 수 있다.

마음의 에너지가 방전되면 자신이 하고 있는 모든 일들이 힘겹게 느껴질 수 있다.

이러한 상태가 지속되면 평소에는 한두 시간 만에 처리하던 일들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계속 붙잡고 있거나 가볍게 웃고 넘길 수 있는 작은 실수에도 크게 짜증을 내며

갈등상황을 만들어 심각한 문제들이 발생할 여지가 높다.

따라서 이러한 문제들이 발생하지 않도록 마음을 단련하며 활력을 줄 수 있는 활동이

필요한 것이다. 그래서 나는 그토록 피곤하게 하루를 보내고도 내 자신을 성찰해보는

작업을 쉬지 않고 한다. 어떤 땐 글을 만들다 책상에서 잠들어 버리지만

세상을 돌아다니고 사진을 찍으며 그 기분을 되살리며  글을 적어내려 가고 있다.

생각없이 살면 머지않아 무뇌아적인 현상이 올지도 모르기에

사소한 일들도 기록으로 남기려 애쓰고 있다.

현대인의 맹점은 詩를 읽지 않고 습작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건강한 삶을 위해선 최소한 시인이 되어야 한다.

시를 읽지 않는 시대에 관해서는 이미 적지 않은 이들이 그러한 현상과 흐름의 배경을

짚어낸 바 있다. 정신없이 돌아가며 과도하게 노동하고 소비하는 삶 속에서,

시라는 존재는 어쩌면 이미 화석화되고 ‘잉여스러운’ 대상이 된 듯도 하다.

누군가는 일갈할지 모른다. 그깟 시 몇 구절로는 젖은 손수건도 말리지 못하며,

굳은 관성과 예단에 틈을 낼 수도 없다고....스마트폰이 순식간에 가져다주는 정보와

쾌락의 바다에서, 소비와 스노비즘이 새로운 상식이 된 삶의 낯익은 풍경 속에서

시란 존재는 독자를 끌 수 있는 힘을 잃었고, 독자는 자신의 귓가에 와서 속삭이는

숱한 광고와 홍보, 그리고 선동과 부추김 속을 부유하기도 한다.

"작위불의태성 태성즉위(爵位不宜太盛 太盛則危)

능사불의진필 진필즉쇠(能事不宜盡畢 盡畢則衰)

행의불의과고 과고칙방흥이훼래(行誼不宜過高 過高則謗興而毁來)."라는 말이 있다.

'벼슬자리는 마땅히 너무 높지 말아야 할 것이니 너무 높으면 위태로우며,

능한 일은 마땅히 그 힘을 다 쓰지 말아야 할 것이니 힘을 다 쓰면 쇠퇴해지며,

행실은 마땅히 너무 고상하지 말아야 할 것이니 너무 고상하면

비방이 일어나 욕이 되느니라.'는 뜻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월악산

출처: https://newsky1515.tistory.com/3379 [인생은 바람이다: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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