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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세년년인부동(歲歲年年人不同)┃詩人이 보는 世上┃2025-04-07

2025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5. 4. 7.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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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분홍 치마가 봄바람에 휘날리더라/오늘도 옷고름 씹어 가며 산 제비 넘나드는 성황당 길에/

꽃이 피면 같이 웃고 꽃이 지면 같이 울던/알뜰한 그 맹세에 봄날은 간다.

열아홉 시절은 황혼 속에 슬퍼지더라/오늘도 앙가슴 두드리며 뜬구름 흘러가는 신작로 길에/

새가 날면 따라 웃고 새가 울면 따라 울던/얄궂은 그 노래에 봄날은 간다’

세상을 사노라면 우리의 삶 속에서도 간혹 이같은 ‘봄날’을 느낄 때가 있다.

겨울 삭풍을 참고 견디면 따뜻한 봄바람이 불어오듯 우리네 삶도 근심 걱정을 겪고 나서

찾아오는 안도감, ‘요즘 같으면 살맛나네‘ 같은 평안함 등이 그것이다.

많은 사람들이 이런 봄날이 항상 있을 거라 착각한다.

하지만 봄날은 어느새 우리 곁을 떠나기 일쑤다. 그것도 알 수 없게 슬그머니 사라진다.

봄날이 떠남을 특히 아쉬워하고 안타까워하고 후회하는 것도 이 때문이다.

나는 좌우명까지는 아니더라도 어느 때부터인가 강노지말(强弩之末)이란 말을

가슴에 담기 시작했다. 힘찬 활에서 튕겨나온 화살도 마지막에는 힘이 떨어져

비단(緋緞)조차 구멍을 뚫지 못한다는 뜻으로, 아무리 강(强)한 힘도 마지막에는

결국 쇠퇴(衰退)하고 만다는 의미(意味)의 고사성어이다. 젊었던 시절에는 아무리 멀리

떨어져 있는 목표물도 뚫을 수 있다고 믿고 살았다. 어쩜 지금까지도 강노(强弩)라고 믿는

구석이 약간은 남아 있는지 모른다. 그러나 현실은 지말(之末)에 무게 중심이 이동한 걸 인식한다.

애써 '지말'이 아니라도 부정해도 내 삶의 봄날을 저만큼 떠나보낸 텅빈 가슴이 이를 반증이라도

하는양 봄날은 나를 쓸쓸해지게 만든다. 사실인즉, 4~5년 전까지만 해도 강노(强弩)라고

철석같이 믿고 살았다. 전에는 '법없이도 살 수 있는 사람'이라는 말을 자주 들었다.

허나, 이젠 '법없이는 살 수 없는' 나약함이 발견된다. 법이 나를 지켜주지 않으면

한시도 살 수없는 무력한 존재로 인간은 전락한다. 그래서 인생의 남은 시간들을 서글퍼한다

 4계절을 사람의 일생과 비교해 보면 1년과 일생의 사이클이 비슷하다.

자연의 순환은 인생 과정과 많이 닮아 있어 예사롭지 않다.

봄이 생명을 탄생시키는 계절이라면 인생의 봄은 시작을 의미한다.

왕성한 여름은 청춘의 시기다. 사방팔방으로 쭉쭉 뻗어나가는 덩쿨들의 생명력에서

인생의 전성기를 보게된다. 그러나 가을의 문턱에 들어서면 그 왕성함이 힘을 잃는다.

요즘 사람들은 먹고 사느라, 각박한 세상을 살아내느라 가을을 느낄 여유도 없어지는 듯하다.

요즘 웃을 일이 없다는 누군가의 말처럼 생활이 사람의 마음까지 위축시켜 놓는다.

사철 푸른 잎의 나무들이 있지만 꽃을 피워 등불처럼 환하게 화단을 밝혀주는 꽃이

사철 피어 있으면 좋겠다. 그래서 주제넘게도 가끔 화분을 사지만 계절에 맞는 꽃화분을

잘 사들이고 또 떠나보내면서 영원히 내 안에만 머물고 갈 것은 아니라는 생각이 들기도 한다.

제대로 꽃을 피우지 못하는 것이 안타까워 씩씩하게 잘 자라는 베고니아 화분을 사다 놓아도

재주가 없는 탓인지 정성이 부족한 탓인지 오래가지 못하고 시들어 버린다.

하지만 내가 아무리 정성을 쏟았어도 결국 계절은 모든 것으로 부터 이별을 노래한다.

나는 또 다시 오래된 유행가 ‘봄날은 간다’를 곧잘 흥얼거린다. '봄날은 간다' 만큼

생명력이 긴 대중가요는 아마 없을 듯 싶다. 또한 우리나라 사람들로부터 이처럼 많은

사랑을 받는 가사도 드물 것 같다. 어차피 봄날은 가게끔 되어 있기에 서글퍼할 필요가

없지만 지난 시절을 부인할 수가 없기에 추억안에 가두고 남은 시간을 맞이해야 한다.

“세세년년인부동(歲歲年年人不同)”이라는 말이 있다.

풀자면 “해마다 사람은 모두 다르다”는 뜻이다. 세월이 흘러도 경물(景物)은 변함이 없지만

시간의 흐름을 따라가는 사람의 모습은 나날이 달라진다는 뜻이다

. “산천은 의구하되 인걸은 간 데 없다”라는 우리 옛 시조가 떠올려지는 대목인 데,

그렇게 시간은 꾸준히 지나가고, 사람의 인생은 덧없이 흘러간다.

영국의 어느 작가가 그랬던가? “너무 행복한 여인도, 매우 행복한 국가도 역사를 가지지

못한다”고. 힘겨운 일을 겪지 않고는 한 단계 성장할 수 없는 건 개인이든 나라든 마찬가지일 터.

그렇다면 내가 겪었던 이런저런 스트레스도, 온갖 시행착오도, 무의미한 일은 아닐 것이다.

내 속마음을 알기까지는 꽤나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고 말하는 사람이 있지만

아마 평생 모를지도 모른다. 어설프게 내 감정을 들어내지 않기 때문에 그런 말이 오갈 것이다.

내 주변엔 많은 지인이 있지만 속에 있는 이야기를 하는 사람은 두세명에 불과하다.

시골생활이 외롭지 않느냐고 묻는 분들이 많다. 불편하냐고 물으면 주저할 필요가 없지만

외로움을 말할 때는 생각하는 시간이 필요하다. 주변에 친구가 없어서 외로운 것이라면

사실인즉 그렇다. 레온사인으로 불야성을 이루는 도심에서 살다보니 캄캄한 시골생활이

적막하다고 느껴질 것이다. 하지만 비로서 남을 의식하지 않아도 되는 자유인이 된 기분으로

내 삶을 디자인하고 있기에 아직은 외로움을 느끼지 않는다. 하루종일 일하고 곤한 몸을

이끌고 돌아와 책상머리에 앉으면 아무런 제약을 받지 않고 문학과 사상의 세계를 넘나들며

인터넷 서핑을 하고 지난 세월을 반추하며 뒤늦은 후회와 반성을 하노라면 외로워 할

시간이 주어지지 않는다. 수면이 극도로 부족한데 허튼 감상에 젖을 시간이 없다.

그래서 나를 더 피곤하게 만든다. 오늘 못하면 내일해도 상관없는 일들이 대부분이지만

굳이 오늘 하려고 고집을 피우는 것은 여유있는 시간이 나를 허탈하게 할지도 모른다는

생각때문이다. 그러니 내 감정을 표출할 기회도 없거니와 내 스스로도 그런 값싼 동정을 받고

싶지 않아 대범한척하며 허탈 웃음으로 대신한다. 나는 참으로 조잡스런 삶을 살고 있다.

금방 희노애락(喜怒哀樂)의 감정이 들통나고 만다. 조금만 추우면 춥다고 안달이고

더우면 덥다고 불평이었다. 마치 요나가 박덩쿨 때문에 죽기를 자처했던 것처럼

감정의 기복이 크고 부침이 심한 심약한 모습으로 살았다. 나이를 먹어가면서는 비탈길을

굴러 내려가는 삶의 수레바퀴에 얹혀져 탈선되지 않기만을 바라며 기를 쓰고 바퀴살에

매달려 정신없이 세월을 보냈다. 아직도 바퀴는 멈추지 않고 오히려 점점 가속도를 낸다.

나 또한 더욱더 악을 쓰고 온힘을 다해 바퀴에 매달려 있을 수 밖에 없다는 생각에

안간힘을 쏟고 있다. 지난날을 생각해 보면 무엇이 좋고 무엇이 옳은지 생각조차 하지 않고

살았다. 오직 낙오되지 않으려 안달이었고 남들보다 뒤처지지 않으려는 몸짓으로 살았으니

정확히 표현하면 이기적인 면이 강했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사량도

경남 통영시 사량면 금평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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