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이상은 조바심을 내지 않고 살기로 했다.
공자는 인간 60이면 이순(耳順)이라 했지만 나이 예순을 넘어서도 남의 말소리가
귀에 거슬려 마음 상할 때가 많다. 듣기가 거북하면 못들은 척, 흘려버리면 그만인 일에
얼굴을 붉히고 억울하단다. 때론 분노와 울분을 토하며 곱씹어 생각한다.
보고도 못 본 척 가볍게 넘길 일에 과민하고 가슴앓이 하던 일들…
노인이면 노인다워야 한다. 그런데 그게 쉽질 않은 모양이다.
고전 인문학자 전호근 경희대학교 후마니타스칼리지 교수는 책 <선배수업>에서
'삶이 노년에 가까워질수록 삶의 무게가 늘어나는 건, 가진 게 늘어서가 아니라
잃어 버린 게 많기 때문'이라고 했다. '잃어 버린 게 많아서 초라해진 자신과 화해'하고
'자신의 정체성을 다시 세우며 '성숙'을 기하는 것이 중년 이후 중요한 삶의 과제'라는 것이다.
'여생(餘生)'....이 말이 '죽을 때까지 남은 생애'를 말한다면 대충이나마
그 끝을 짐작할 수가 있을게다. 10년, 혹 20년쯤의 자투리 시간이 있을지 모르지만
그냥 아무 할 일없이 남겨진 시간으로 보낸다면 끔찍하기만 하다.
그래서 무엇인가를 획책(?)한다. 남들이 보면 어리석어 보일지 모르지만 쓰고도 남은 시간으로
버리지 말아야겠다고 날마다 다짐한다. ‘산다고 살고도 남은 인생’,
여생을 그렇게는 생각지 않는다. 무엇인가 쓰다 남은 군더더기가 여생의 여(餘)는 아니다.
그럴 수는 없다. 여생의 여는 넉넉하고도 충족한 것이다. 풍요(豊饒)의 ‘요(饒)’와 뜻이 통하는
글자가 바로 여(餘)다. 모자람 없이 풍족한 것이 곧 여(餘)다.
여유(餘裕)의 ‘여’가 그걸 익히 보여주고 있다. 여유(餘裕)는
상대의 말을 귀담아 들어주고, 한 박자 쉬는 것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대관령 양떼목장
출처: https://newsky1515.tistory.com/3314 [인생은 바람이다:티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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