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가는 가을 은빛 갈대와 억새가 ‘어서 오라’는 듯 손짓한다.
그곳으로 단숨에 달려가고 싶었다. 단풍이 오색 빛 화려함으로 가을을 꾸민다면
은빛 억새는 은은한 느낌으로 수수한 듯 황홀한 가을의 낭만을 담아낸다.
그래서일까. 사람들은 오히려 억새를 '가을의 서정'에 곧잘 빗대곤 한다.
한바탕의 가을 바람에 파도처럼 출렁이는 억새의 군무, 눈앞에 어른 거리는 은빛물결은
'가을의 열병'을 한아름 안겨 놓고 사라진다. 억새와 갈대는 각각의 차이점이 있다.
억새가 ‘조신한 여성’이라면 갈대는 ‘억센 사내’에 비유되기도 한다.
갈대는 사람보다 크게 자라며 주로 바닷가나 강가의 물가에서 자란다.
억새는 산잔등이나 둑길 등에서 볼 수 있다.
가을이 지고 있는 자리에 정겨운 사람과 함께하는 억새축제,
그 현장으로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었다.
갑자기 황매산 억새라도 보고 왔으면 하는 생각이 들었다.
흥겨워 부는 가을바람에 억새와 황매산의 하얀 물결이 어우러져
잠시 여유를 부릴 수 있는 쉼터가 되고 후한 인심과 즐거운 체험이 함께해
누구나 함께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었다.
바람에 흔들리긴 해도 부러지진 않는 특성을 보면서 나도 그렇게 살기를 마음에 다짐했다.
세상이 점점 거칠어지고 있다. 내가 힘이 없으면 내가 당할 수 밖에 없다고 한다.
그래서 모두들 힘을 기르려고 한다. 대부분의 일반인들이 생각하는 것은 그런 것이다.
여기서 발상의 전환이 필요하다. 힘으로 맞서는 것은 한계가 있다.
그렇다면 그 반대는 어떨까? 반대라 할 수 있는 부드러움에는 한계가 없다.
그리고 부드러움은 강한 것을 이겨낼 수 있는 더 큰 힘이 있다.
때로는 나보다 큰 힘에 눌려 답답해 할 때가 많았다.
내가 힘이 덜 하다고 생각되어 분하고 억울할 때도 있었다.
그래서 부지런히 힘을 키우던지 아니면 포기하려고 할 때도 있었다.
그러나 단시간에 힘을 키워 이길 수 있다면 즐겁겠지만,
이것은 쉬운 방법도, 좋은 방법도 아니다. 강한 바람에 꼿꼿이 서 있는 나무는 부러지기 쉽지만,
바람에 쉽게 흔들리는 약하디 약한 갈대는 흔들리긴 해도 부러지지 않는 것과 같은 이치이다.
또한 차가운 바람은 행인의 코트를 벗기지 못할지라도,
따스한 햇빛은 행인의 코트를 벗길 수 있다는 어린 시절 즐겨 읽던
우화와도 일맥상통한다. "A drowning man is not troubled by rain."이라는 말이 있다.
물에 빠진 사람은 비를 신경 쓰지 않는다.
처음이 문제이지 한번 자빠져 보면 이젠 흙탕물 정도는 근심거리가 아니다.
큰 일을 당한 사람에게 작은 일은 아무 것도 아니다.
나는 모든걸 내려놓자고 다짐할 때 아무리 힘들어도 신음소릴 내지 않겠다고 약속했다.
가끔 갈대가 흔들거리는 모습을 보며 의기소침해지곤 하지만
그건 계절탓이지 내 결심이 흔들린 건 아니다. 커피 한잔을 끓여 산 중턱에 앉았다
-全政文 詩人의 ((인생은 바람이다)) 중에서-
photo back ground- 황매산 억새
경남 합천군 가회면 둔내리 산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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