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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촌 한옥 마을에서┃詩人이 보는 世上┃2023-07-03

2023年 日常

by 詩人全政文 2023. 7. 3. 00: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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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이 죽는 건 숨이 멈추어졌을 때가 아니라

모든 이의 기억에서 잊혀졌을 때라고 한다

언젠가는 잊혀질 존재라는 사실에 생각이 고정되면

내가 서 있는 이곳이 '시실리(時失里)'가 되고 만다. 비가 점점 굵어진다.

갑짜기 심수봉의 ‘그 때 그 사람’을 흥얼거리며 통치타를 치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 때 그 사람’은 비와 인연이 있다;

비가 오면 생각나는 그 사람/ 언제나 말이 없던 그 사람/ 사랑에 괴로움을 몰래 감추고/

떠난 사람 못 잊어서 울던 그 사람/ 그 어느 날 차안에서 내게 물었지/

세상에서 제일 슬픈 게 뭐냐고/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라며/

고개를 떨구던 그 때 그 사람

이 가사에 젖어있는 애잔한 곡은

“사랑보다 더 슬픈 건 정”이란 대목에서 흔히 눈시울을 적시게 한다. 

사랑은 언제든지 놓을 수 있어도 정을 지우기란 어렵다.

특정인에 대한 아쉬움의 표현으로서의 정이 아니라

마음의 끈으로 연결된 무수한 인간들의 인연의 복합체로서의 정.

그것은 ‘사랑보다 더 슬픈 것’이라기보다는 ‘사랑보다 더 깊은 것’이라고 말할 수 있겠다

추적추적 내리는 장맛비가 거미줄에 초롱초롱 보석같이 맺히면

창문너머 살구나무 가지 끝에 매달려 있는 풋살구를 살그머니 쳐다보며

오늘 아니면 내일 까마귀 밥 몇개를 남겨놓고 모두 따려 마음 먹었다.

나에게 딱히 일용할 양식은 아니었지만

애써 키운 살구와  복숭아를 모두 까마귀 먹잇감으로 남기기에는

내 마음이 넉넉지 않다는 생각에 실소가 입가에 흐른다.

후두두 후두두 내리는 비가 개울가를 흘러서 지나쳐 가다가

논둑 아래 똘물로 떨어져 내리면 바구니로 미꾸라지를 가득히 훑어 담아

살이 꺾인 우산을 받쳐 들고 오래된 장맛 같은 친구를 찾아가서

툇마루에 걸터앉아 나누던 정담으로 어느새 가마솥에 추어(鰍魚)가 끓고

삼복 더위를 이기던 생각에 잠긴다. 그게 우리가 여름을 나는 방식이었다.  

 

photo back ground-北村한옥마을에서

서울 종로구 북촌로 53

가회동 30-2 (지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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