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독은 에스프레소(espresso)┃詩人이 보는 世上┃2025-01-14
나는 젊었던 시절부터 사람을 몰고 다니는 재주가 남달랐다.
남들과 특별히 다른점이 있는 것도 아닌데, 항상 내 주변엔 많은 사람들이 있었고,
남에게 그렇게 밉상은 아니었던 것 같다. 물론 내 착각일 수도 있겠지만 친구들도 참 재미있는
친구라는 인식을 가지고 있었고, 우스개 소리도 곧잘하여 인기만점이었을 거라는 사람들이 많다.
그러나 아무나에게 농담을 건내고 말을 붙히는 성격은 아니다.
하루 종일 거의 말한마디 안할 때도 있다. 특히나 오늘같이 폭설이 쏟아져 두문불출하는 날은
어쩔 수 없는 상황이긴 하지만 평상시에도 거의 실어증 환자처럼 살 때도 많다.
그렇다고 고독하단 생각을 가져 보질 않았다. 사람이 많으면 많은대로, 혼자이면 혼자인채로
살아 갈 나름대로의 방안을 만들어 놓고, 설령 그것이 고독이라 이름지어진 것일지라도
만족하고 자족하려 노력중이다. 내 주변 친구들 대부분은 와이프 없이는 단 하루도 살아 갈 수
없는 철딱서니들이 대부분이다. 한시도 와이프를 놓아주지 않으려한다.
아무리 사랑스러운 딸이라 할지라도 스무살이 넘으면 서서히 놓아줄 준비를 해야 한다.
사랑스럽다고 죽을 때까지 품에 끼고 살 수는 없지 않은가?
와이프 역시 30년쯤되면 이제 자유롭게 외출도 하고 여행도 하고 취미생활도 하게 놓아주라.
하루 세끼 다 찾아 먹으려 하니 '삼식이' 소릴 듣는게 아니던가?
아내들이 남편을 귀찮은 존재로 여기기 시작한다. 세상에서 귀찮은 존재가 된다는게
가장 서글픈 일이다. 'burdensome'은 귀찮음, 견딜 수 없도록 무거운짐이라는 의미인데
내가 남에게 짐이되는 것도 싫지만 남의 짐을 떠안는 것을 감당하기가 어렵기에
혼자이기를 자처했다. 처음에는 두려웠다.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한번도 고독이라는 섬에 갇혀 본적이 없었기에 내 스스로 매너리즘에 빠져 든다는 것이었다.
어느 자서전에 나오는 이야기다. 남편과의 이혼으로 외딴 산속 농가에 개 한 마리와 남게 된
여자는 "처음엔 정말 슬프고 무서웠다"고 말한다. 자신의 능력을 시험해보는 의미에서
사계절 동안 은둔자로 살아보기로 마음먹지만, 마트에서 "1인분 주세요"라고 말할 때,
눈구덩이에 빠진 차를 혼자 밀 때, 폭설에 갇힌 농장에서 수의사의 전화 지시 대로 아픈 개의
수술을 할 때 힘들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차차 두려움과 외로움이 걷혀가면서 여자는
생각지 못한 '고독'의 속살을 보게 되었다. 옆에서 종알대는 사람이 사라지고 나니
나무에서 수액을 빨아올리는 소리부터 집이 기지개를 켜는 소리까지,
시끌벅적한 자연을 발견하게 되었다. 그 힘든 1년을 거치면서 자신감과 마음의 평화를
얻었고 고독이 가져다 준 선물을 얻었다고 고백한다. 무슨 일이던지 처음이 문제이지
자신을 어느 정도 정리하면 약간이나마 평온스런 감정이 생기기 마련이다.
나 역시 무수한 날동안 '왜?'라는 의문 부호를 가지고 씨름해야 했었다.
내 주변엔 언제나 많은 사람들이 운집했었다. 이용 가치가 있어서인지 아님 재미있어서인지
단 몇시간도 혼자있는 시간이 없었다. 늦은 밤시간까지 까페에서 정치도 하고 교제도 나누고 했다.
그러나 찬란하지도 안했지만 내 스스로 화려한 일상이었다고 믿었던 지난 세월을 철저히 부인하고
새출발하겠다는 의지를 불태우면서 과거를 토해내기 시작했다. 말처럼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지난 세월의 흔적을 지우고 잊으려 노력한 건 사실이다.
엘버트 하버드는 "잊어 버리는 능력 이야말로 위대함의 표시"라고 했다.
그러나 기억력의 감소를 비관할 필요는 없다. 건망증은 인간만이 가지는 특징이다.
컴퓨터와 로봇은 기억이 지워지면 기억이 존재했다는 것을 인식할 방법이 없다.
그러나 인간은 기억이 지워져도 내가 그 기억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은 신기하게도 기억한다.
그것은 인간이 사실을 편집하여 기억하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는 모든 사실을 있는 그대로 기억하지 않고, 그 사건의 의미만을 기억하기 때문에
기억에는 차이가 생긴다. 그래서 동일한 사건을 경험한 두 사람이 나중에 그 사건을 기억하는
과정에서 서로 다른 이야기를 하는 경우를 종종 보게 된다.
그런 증상은 부부 싸움 후에 가장 잘 나타난다. 싸움의 원인과 해석이 서로 매우 다른
경우가 많은데, 싸움이 일어난 것은 사실이지만, 그 싸움에 대한 의미 해석은 기억의 편집
과정에서 달라진 것이다. 인간은 고독한 존재이다. 고독은 에스프레소(espresso)와 같다.
쓰디 쓴 달콤함처럼, 처음에는 낯설지만 익숙해지면 매혹되는 최상의 향기다.
그리고 우리가 의미없는 방황을 멈추고 에스프레소를 즐기듯 고독 속으로 침잠(沈潛)하는
기술을 익혀야 외로움을 극복할 수 있다. 마음을 차분히 가라앉혀 깊이 사색하거나
자신의 세계에 깊이 몰입함으로 견디어 낼 수 있다는 걸 알았다.
이윤정이라는 작가의 글에 "태어나서 인생 처음으로 늙어가고 있다.
늙는 것은 두렵지만, 처음이기에 설렌다."는 글이 좋아서 메모해 두었다.
나 역시 처음 늙어 보는 것이라 설레임까지는 아니더라도 후회를 안남기려 애를 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독수리의 혼자 겨울나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