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年 日常

겨울은 깊어간다┃詩人이 보는 世上┃2024-12-07

詩人全政文 2024. 12. 7. 00:57

 

서울은 꽤나 많은 눈이 내렸지만 어제에 이어 중부지방에 폭설이 내릴 거라는

문자메세지가 쇄도 한다. 시골은 조금만 눈이 쌓여도 동네를 벗어날 수 없으니

자연 책상앞에 앉아 청승을 떨 때가 많아지게 될 것이 걱정이다.

애써 아니라고 도리질을 해보지만 우울모드에 빠져 드는 건 어쩔 수 없는 일이다.

좋았던 기억보다는 슬펐던 기억이 더 생생하고 내 생전에 몇번이나 환희의 순간이 있었는가를

생각하며 눈물짓게 된다. 겨울이 다가 오고 눈이라도 내리면 젊었을 때 보았던

‘러브 스토리’라는 영화가 먼저 떠오른다. 지금은 전체 내용은 기억나지 않지만

사랑하는 두 사람이 눈 위에 뒤로 벌렁 누워 눈사진을 찍던 모습만은 마치 어제 본

영화처럼 떠오른다. 어릴 때 우리들은 그런 눈사진을 참으로 많이 찍었기 때문이다.

때로는 혼자 그러기도 하고 또 친구들과 손을 잡고 함께 눈 위에 뒤로 벌렁 눕기도 했다.

그리고는 그게 누구의 눈 사진인지를 알아맞히는 내기를 했다. 이렇게 겨울 고향에 대한

내 추억은 언제나 그렇게 눈과 함께 한다. 11월의 눈이 폭설로 이어지는 예는 드물지만

최근 들어서는 지켜지지 않는 약속처럼 사정없이 퍼붓는 기상이변이 자주 일어나고 있다.

예로부터 사계절이 뚜렷한 우리나라에서는 첫눈이 내리는 날을 기점으로 겨울추위가

본격화 하는 것으로 믿었다. 그래서 하늘에서 내리는 눈을 상서롭게 여기면서도

겨울채비가 덜 끝난 서민들은 너무 일찍 내리는 눈을 원망하며 추운 겨울을 어떻게 날 것인지

걱정했다. 눈이 내리면 제일 먼저 막히는 길이 달동네 언덕길이다.쌀이며 연탄배달이

끊기는 건 당연하다. 지금처럼 포장도로가 흔치 않던 시대에는 눈이 내리면 평지라 해도

으레 사나흘씩 길이 막혔다. 첫눈에 대한 추억은 이처럼 불편했던 기억을 동반하지만

그래도 많은 사람들이 첫눈이 내리면 설레는 이유는 거기에 사랑이 녹아있기 때문일 것이다.

이를 대표하는 말이 ‘첫눈 오는 날 만나자’다. 하늘이 점지해주는 날 만나자는

이 낭만적 약속이 얼마나 많은 젊은이들을 울리고 웃겼던가? 첫눈이 사람들에게

흥분과 묘한 기대를 안겨주는 건 ‘첫’이라는 관형사 때문이다.

무슨 일이든 첫 번째는 기억에 오래 남는 법. 첫사랑이 그렇고, 첫입맞춤이 그렇고,

첫출근도 마찬가지다. 첫눈 내리는 날은 무언가 의미 있는 일을 만들어야 한다는

강박관념까지 작용한다. 함박눈이었으면 좋겠는데 비가 내리다 우박이 쏟아지고

진눈께비로 변하는 일기불순이 계속된다. 창문 너머로 호젖한 산길이 보인다.

마음을 다잡을 수 없어 동네 작은 숲으로 걸었다. 걷다보면 잔광(殘光)에 부서지는

산벚나무 단풍 이파리들이 내뒹구는 모습이 눈에 아리게 들어온다. 마른 잎 쓸고 가는

바람소리가 찬바람 목덜미 스치는 것보다 더 시리다. 산 구비 돌때마다 저 먼 산 능선들은

어깨동무하고 아스라이 다정한데 한 나무에서 자란 한 혈육이면서도 이제 뿔뿔이 흩어져

날리는 저 낙엽들이 더 서럽게 흩어지고 있다. 그렇게 애잔하고 서러운 것들이 마음을

한층 여리고 예민하게 하며 겨울은 깊어 이제 산간에는 눈발도 흩날리고 얼음도 얼게 하며

겨울로 가는 길목이 나타난다. 한해의 끝자락도 얼마 남지 않았다.

겨울이 목 잘린 수숫대처럼 외롭고 쓸쓸하게 선채로 그리움만 출렁이고 있는

달이기도 하다. 애써 슬픈 표정을 감추고 냄비에 스프를 넣었다.

겨울을 이기기엔 라면이 최고이다.

 

-全政文 詩人의 ((흘러가는 시간앞에서)) 중에서-

photo back ground-충북 청천 화양계곡 가는길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