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年 日常

인생이란 즐거운 소풍 같은 것┃詩人이 보는 世上┃2023-07-10

詩人全政文 2023. 7. 10. 17:07

 

우리가 혼돈에 자주 빠지는 이유는 악랄(惡辣)하게 사는 사람이 잘되고,

선하게 사는 사람이 고통받을 때 당혹스러움을 들어낸다. 

착한 사람은 복을 받고 나쁜 사람은 벌을 받는다는 고전적인 지혜의 가르침을 원칙적으로

인정한다 해도 이 세상에는 설명할 수 없는 고통이 너무나 많다.

구약성경 욥기에서 욥은 그러한 고통을 대변하고 욥의 친구들은 전통적인 가르침을 고집한다.

고통속에 빠진 자신의 현실보다 자신을 정죄하려는 친구들의 몰이해가 더 가슴 아프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래서 지루한 논쟁에 휘말린다.

그러나 욥의 위대함은 창조주 하나님의 권능 앞에서 인간 자신의 위치를 올바로 인식했을 때,

인간이 취하는 자세는 “손을 제 입에 갖다 댈 뿐”(욥40:4)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인간들하고 변론해봐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는 걸 알았기에

더이상 무의미한 논쟁을 중단하기로 결심한다

인간사회에는 양심과 도덕, 신의(信義)를 지키며 정도(正道)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이와 반대로 자신의 이익이나 욕망을 위해서 비양심과 부도덕, 불의와 타협하며

사도(邪道)의 삶을 사는 사람들이 있다 그러나 삶의 현실은 의외다.

세속의 유혹에도 꼿꼿이 자기를 지키며 정도(正道)의 삶을 사는 사람은 세상에서 외면을 당한 듯

초라하고 쓸쓸하다.반면에 불의와 타협하여 권세에 아첨하고 이권을 탐하며 사는 사람은

오히려 부귀영화를 누리며 산다. 그러나 이러한 삶의 현실은 한순간일 뿐이다.

하늘의 법도는 사필귀정(事必歸正), 정도(正道)의 삶을 사는 자가

반드시 승리하게 되어있는 법이다.

그러므로 사람은 '구십 리를 가고도 남은 십리 길을 오십 리로 여기라’는 말처럼

관 뚜껑을 덮을 때까지 흐트러짐 없이 정도(正道)의 삶을 살아야 할 것이다

지금 설왕설래(說往說來)해 보아야 아무런 소용이 없다.

비교적 아름답고 좋은 기억으로 세상을 떠나는 자들이

편히 눈을 감을 수 있을 거란 막연한 생각을 해보았다.

물론 아직 죽어보지 못해 꼭 그런지는 잘 모르겠지만 말이다.

내가 이런 생각을 하게된 것은 후회 없는 하루를 보낸 사람들이

밤에 편히 잠들 수 있는 현상과 같은 맥락에서이다보통 쾌적한 수면이 상쾌한 아침을 만들고,

이로써 활기찬 하루를 보낼 수 있는 것을 보면 한 인간의 생애도 후회없는 생을 산 사람들이

일생을 마친 다음 편안한 죽음의 순간도 맞이할 거란 생각이 든다.

아직 그 순간을 직접 경험해 보지 못했지만 말이다. 대체적으로 잘사는 것이

건전한 내세(來世)의 운을 결정하는 요소가 된다는 사유의 확장을 가져오기도 한다.

라틴어에서 진실(veritas)의 반대말은 거짓(falsum)이 아닌 망각(oblivio)이라고 표현한다.

정직하고 진실함은 무관심과 망각을 넘어서 기억하고 증언하는 것이다.

기억 윤리이다. 진실한 것은 잊을 수 없다. 그러나 기억하는 자는 소수이다.

그래서 증인과 다수의 결집된 역량이 요구된다.

내가 진실한 사람인가는 내 과거를 알고 내 부족함을 기억하는 것에서 출발한다.

자신을 포장 확대하거나 미화시키는 사람은 진실하지 못한 사람이다

천국은 자신의 허물을 기억하고 슬퍼하며

자신이 해결할 수 없어 주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이 가는 곳이다.

그걸 진즉 깨닫는 사람이 현자이고 지혜로운 사람이다. 두보의 '개관사정(蓋棺事定)'을 보자.

백년이 지나 죽은 나무로도 거문고를 만들고, 아홉 썩은 물에도 교룡(蛟龍)이 살고 있는데,

어찌하여 젊은 사람이 '하한초췌재산중(何恨憔悴在山中)',

즉 초췌한 몰골로 산중에 있음을 한탄하느냐고 물으며 자고로 사내 대장부는 관(棺)뚜껑을 덮을 때

비로소 진가가 들어나는 법이라고 격려했다고 한다.

관 뚜껑 닫은 뒤에 만사는 끝난다는 뜻으로 그 전까지는

아무도 예측불허(豫測不許)한 것이 인생이라는 말이다.

오늘 성공했다고 해서 기고만장(氣高萬丈)하는 사람이나

한 때 실패했다고 해서 의기소침(意氣銷沈)해 지는 사람은 인생을 절반밖에 모르는 사람이다.

목적을 달성했다고 해서 인의(仁義)를 저버리거나 의리를 버리는 사람은

어찌 인간(人間)이라 하겠는가? 인(人)이란 사이 간(間)이 있어야 형성된다.

간(間)이 없다면 그건 짐승에 불과하다.

저혼자만 잘 살겠다고 아둥바둥하는 건 인간이 아니라는 말이다.

죽어 널(棺)뚜껑을 덮어 줄 수 있는 가족이 있다면 그게 행복이고,

널(棺)을 부여잡고 울어 줄 친구 하나 있으면 족하지 무슨 욕심이 그리 많은가?

나는 내세울 것도 보잘 것도 없는 전력이지만 지금까지의 내 인생을 돌아보며

용캐도 잘 살아온 나를 토닥이며 참 잘했다고 칭찬해 주고

남은 생은 여행하듯 가볍고 즐겁게 살자고 다짐하곤 한다

물론 실수투성이고, 후회스런 일들만 남아 있지만

그렇다고 패배자로 살아 온 거라고 단정지으며 한숨이나 쉬며 절망감에 빠져 사는 것보단

남들이 인정해 주던 말던 스스로 위안을 삼는게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어

억지춘향식으로 스스로에게 박수를 보내며 살기로 했다.

혹자는 당신이 박수(拍手)받을만한 삶을 살았냐고 시비를 걸어 올지 모르겠지만

남들이 안 알아주니 내 스스로 뻔뻔해지기로 작정했다고 주장하면 그만이다.

내 생애에서 본인의 인생목표점수가 얼마인지는 모르지만 인생의 숙제를 다 할 생각은 없다.

그냥 나에게 주어진 숙제를 매일 즐기다 때가 되어

하늘에서 부르면 그때 자연스럽게 가면 되는 것이다.

인생이라는 시험에 만점 맞을 필요는 없다. 다른 어느 누구도 내 인생을 채점할 수는 없다.

그 인생에 대한 시험결과는 오직 내 스스로가 채점할 뿐이다.

평균 점수만 맞아도 인생사(人生史)는 우수하다.

한번뿐인 내 인생, 너무 타이트하게 살 필요 없다. 내 스스로 나에게 매일 칭찬하면서 살고,

나에게 오늘 하루도 수고했다고 상주면서 박수쳐주면서 살면 된다.

시인 천상병은 인생은 잠시 소풍 왔다 가는 거라 했지 않은가?

천상병시인의 말처럼 인생이란 즐거운 소풍 같은 것 아닌가?

즐겁게 놀러왔다가 즐겁게 놀고 가는 것 그게 인생 아닌가?

나이 들면 중요하게 해야 할 일이 적어지고

나를 찾는 사람도 줄어드니 서두를 것은 없지 않은가?

 

photo back ground-백제  불교도래지에서 바라본 영광대교

전남 영광군 홍농읍 칠곡리